창시자이자 세계가 인정하는 20세기 최고의 화가다.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표현기법을 끊임없이 선보이며 전생애에 걸쳐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친 그의 영향력은 당대는 물론 현재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영국유수의 계간지 "유럽퀄리티"가 유럽의 저명학자 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세기를 빛낸 유럽인"중 3위에 선정된 것은 그같은 사실을 단적
으로 입증한다.
스페인 남부 항구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나 14세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한 뒤
미술공부를 시작한 그는 프랑스와 북유럽 미술운동에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르노아르와 뭉크등의 화법에 매료된다.
16세 되던 1897년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 개인전을 연
그는 1900년 파리로 이주, 몽마르트에서 활동하면서 이른바 하층민들의
참상과 고독감을 표현한 "청색시대" 작품으로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는다.
이어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까지 담아내는 아프리카 흑인조각의
영향을 받은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리면서 입체주의를 창조한다.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를 창시한 그는 그러나 곧 신고전주의라는 새로운
사조에 빠져든다.
1917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고전에 매료된데다 발레리나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그에게 변화를 가져다 준 것.
피카소의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25년부터 초현실주의에 몰입한 그는 이후 생을 마감한 73년까지 세라믹
판화 소묘 무대디자인 등 다양한 재료와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수단을 끊임없이 개발해 냈다.
전쟁의 비극과 잔학상을 예리한 시각으로 그려낸 "게르니카"를 비롯,
수많은 대표작을 남긴 그는 6.25를 다룬 "한국의 학살"(51) "전쟁과 평화"
(52) 등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