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의 침묵을 깨고 신작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마련한다.
10월1~15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734-8215)에서 열릴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은 단순하면서도 함축미가 돋보이는 "청동.기.시대" 시리즈
30여점.
단순한 형태와 선, 깨끗하게 처리된 인공적인 면과 자연 그대로의
단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근작들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추구하는
작가특유의 조형언어로 해석된다.
엄씨가 다른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브론즈대신 줄곧 순동에 매달려온
것은 재료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 때문.
순수한 동판재의 질료적 매력은 우선 차가우면서 견고한데다 표면의
윤기가 발산하는 세련미가 브론즈와 확연하게 구분된다고 밝힌 그는
무엇보다 유사이래 인간과 가장 친근하게 관계를 맺어온 금속이라는 점이
오랫동안 집착해온 동기라고 설명했다.
70년대 초창기 그의 작업은 주로 동판을 서로 연결시켜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어 점차 윤기있는 금속면과 부식된 거친면의 대비를 통해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던 그는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수평선과 수직선, 원통과
덩어리로 된 일종의 기하학적 풍경을 만들어내 다시한번 주목받게 된다.
92년 독일 베를린예술학교 교수로 초빙돼 그곳에서 1년여의 연구기간을
보낸뒤 보다 심화된 자기세계를 확보하고 돌아온 그가 새롭게 선보인 것은
물질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오묘한 조화들을 조형언어로 표현한
다양한 형상.
이러한 형상들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적동과 황동으로 이루어진 동판과
동괴의 절묘한 결합으로 나타나는데 상자모양의 사각형태에 평면과 직선
엇물림이 더해져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절묘한 구조를 띠고 있다.
수평과 수직구조를 이루는 탄력적인 형태는 그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예술관의 화두인 "천지인의 조화"를 나타낸 것.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아래 존재하는 인간이 하나의 순리와 균형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다.
< 백창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