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산에 오른다.

오늘은 무슨 예쁜 꽃이 나를 반길까.

항상 낯익은 나무 친구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까.

설레는 마음과 기대로 산에 오른다.

황금빛 키다리 "마타리꽃"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면서 가는 계절을 아쉬워
한다.

수줍은 "며느리밥풀꽃"이 무리지어 나무그늘 아래 다소곳이 피어있다.

연보라색 "개쑥부쟁이"가 청초한 자태를 숨기고 있다.

이 모두 이맘때 쯤 가을 야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정겨운 모습들이다.

건강을 유지하고 자연과 만나기 위하여 산행을 즐기기 시작한지 몇년이
지난 어느날, 무턱대고 오르고 내리기만 하는 산행의 재미를 더 보탤 수는
없을까 궁리하던 끝에 산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꽃과 나무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선 부딪치는 문제는 식물들의 이름을 잘 모르는 것이었다.

식물도감을 배낭에 챙겨넣고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면서 보고 익힌
실력이 바닥을 드러낼 때는 주저없이 산행을 멈추고 식물도감과 씨름하거나,
집에 돌아와서 오늘 만났던 식물들을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이름을 외우고
관심을 갖기 시작한지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산야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의 이름 생태 용도 등을
어지간히는 알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서로의 애정과 관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모르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 때는 서로 무관심하나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이란.

사람과 꽃, 나무와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와 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꽃, 아는 나무와 만났을 때 그 반가움이라니.

그 많은 시간 산행을 하면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꽃 나무들과 애정을
가지고 무언의 대화를 나눌 때의 희열은 느껴 본 사람 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산행인구가 5백만명이 넘는다는 통계에 접하면서 건강을 이유로,
그저 정상정복의 즐거움을 위해서 내일도 산을 오를 동호인들에게 "꽃산행"을
즐기면서 또 하나의 자연사랑의 큰 희열을 맛보기를 감히 권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