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동안 방송3사는 요란한 제목의 특집프로그램과 재탕, 삼탕의
외화를 홍수처럼 쏟아냈다.

SBSTV가 15일 방영한 추석특집드라마 "약속" (극본 박남준 연출
장형일)은 무성의한 특집프로 사이에서 단연 돋보인 수작이었다.

"약속"은 박완서의 단편소설 "오동의 숨은 소리여"를 "형제의 강"의
연출자 장형일PD가 극화한 작품.

반평생을 함께 한 노부부 평하 (신구)와 윤영 (반효정)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죽음을 앞둔 윤영과 그의 죽음, 홀로 남게된 평하의 비탄과 고독,
자식과의 갈등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효와 노인 문제 등 진부하게 느껴지는 소재를 다뤘지만 서정성 높은
화면,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인물묘사로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와 효의
가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케 했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주인공인 신구와 반효정 두 연기자의
탁월한 연기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이신재 임현식 길용우 이덕희 맹상훈 등의 연기도 이를 뒷받침했다.

신구가 그린 평하는 융통성 없고 고집센 전형적인 한국의 남편상이자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다.

홀로 남게 될 남편이 안쓰러워 죽는 순간까지도 걱정하는 윤영은 남편의
정성이 더욱 가슴아프게 느껴진다.

자신이 없어도 남편이 불편하지 않도록 조그만 것까지 노트에 기록하는
배려를 하며 죽음을 준비한다.

병세가 악화된 아내를 큰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집을 팔고 돌아온
평하의 눈앞에 윤영은 싸늘하게 잠들어 있다.

아내의 죽음은 평하와 자식간의 새로운 갈등을 예고한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대사와 화면구성은 평이하지만 섬세한 표정 하나하나를 담아낸 촬영
기법은 칭찬할 만하다.

연출자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 정통적인 드라마작법으로 극 자체의
감동을 전달하려고 한 것같다.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아담한 소도시의 기와집.

장독대와 텃밭이 있는 노부부의 집은 4남매가 나서 자란곳으로 우리
가슴속의 고향을 상징한다.

반대로 화려하게 장식된 장남의 고급아파트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간간이 들려오는 회심곡의 애절한 가락은 극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보다
강렬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특별한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없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 것이
아쉬웠다.

< 양준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