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에 6천억원어치의 정부보유 주식및 채권을 현물출자키로
결정했다는 재경원발표가 나왔다.

아마도 적잖게 고심한 끝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판단아래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으로 본다.

현 상황에서 제일은행의 재무구조개선은 증자 외에 달리 길이 없을
것이라는 시각은 옳다.

1조원의 한은특융을 연리 8%로 1년간 지원해봐야 그 지원효과는 4백억
원정도에 그친다는 계산이고 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수 없을게 자명하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몰고올 부정적인 효과 역시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우려를 떨쳐버릴수 없다.

우리의 우려는 이번 결정에 비판적 관념적인 경제전문가들의 시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은행도 민간기업의 하나인 이상 그 부실경영을 정부가 떠맡아서는
안된다거나, 이번 기회에 은행도 망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관념적인 원칙론자들의 주장은 적어도 현 상황에서는 적절치 못하다는게
우리의 시각이다.

우리가 가장 걱정스럽게 여기는 것은 이번 결정이 겉으로나마 일관되게
추진해온 금융기관 민영화및 자율화정책과 근본적으로 상충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정부가 제일은행을 지배하기 위해,관치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꼴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점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6천억원을 정부에서 출자, 49%의 보통주를 갖게 되면 제일은행은 사실상
국책은행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임원선임 정관변경 배당률결정 등 주총의결사항에 해당되는 주요 결정에
대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뿐 통상적인 경영에는 간여하지 않겠다는게
재경원 설명이지만 걱정은 한둘이 아니다.

단 한주도 없이 사실상 시중은행장 인사를 제멋대로 해온 재경원이
제일은행의 대주주라는 "날개"까지 달게 되면 어떻게 될까.

재경원은 바로 그런 시각을 감안, 무의결권 우선주 인수방식의 출자를
검토했으나 배당을 못하면 무의결권 우선주도 보통주로 바뀌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부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정부보유 유가증권을 현물출자할때 계약서형태로 정부주 의결권행사
제한조항을 둘수도 있다.

한국통신주 등 증시상황 때문에 마음대로 처분할수도 없는 정부보유
유가증권으로 현물출자할게 분명하다고 보면, 그런 조항을 두는게 더욱
당연하다.

팔지 못할 유가증권의 현물출자는 정부가 갖고 있던 주식 등을 제일은행이
보관하고, 정부는 제일은행주를 보유하는 형태라고 볼때 일정기간후 은행의
선택에 따라 교환할수 있다는 부대조건과 교환보유기간중 의결권제한이
가능할 수도 있다.

지극히 형식적인 것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제일은행이 국책은행화되는 형태는 어떻게든 피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형식과 실제 양면에서 정부가 제일은행을 지배하는 꼴이 되는 것은 전체
금융산업을 위해서는 물론 기아문제 처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