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조 <향영21C리스크컨설팅 대표>

"지금은 신용공황이다"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안정성을 믿지 못하고 있다.

제2, 제3의 기아사태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정부당국이나 현실에 어두운
이코노미스트들은 "기업의 경영실패가 원인이다.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므로 정부는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교과서와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기업들은 죽어가고 있다.

"기업들을 안락사시키지 말라" 6개월이면 아무런 후유증도 없이
치료가능한, 이를테면 초기 암환자인 기업들을 말기 암환자로 착각하여
안락사시키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기업의 부실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 접근방법에 차별화가 이뤄져야 한다.

진로 대농 기아문제는 전적으로 경영실패가 주 원인인 한보나 삼미그룹과는
차원이 다르다.

진로 대농 기아는 경영의 실패라기 보다는 80~90%는 한보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의 대출금회수에 기인한 것이다.

금융기관들의 대출금회수가 없었다면 거액의 자구노력이 가능했던 진로
대농 기아그룹사들은 향후 2~3년 동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금융기관도 자금회수에 앞서 자구노력을 요구했어야 했다.

지금은 이미 문제가 된 대농 진로 기아그룹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 모색이
시급하며 제2, 제3의 기아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사전적인 노력이 없으면 신용상태가 극히 양호한 일부 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협력업체는
물론 상당수의 금융기관들이 도산에 이르러 경제전반이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 기업 금융기관 모두가 손실을 줄이면서 서로 살아나는
방향, 즉 윈윈(Win-Win)게임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첫째 정부는 금융기관이 거래기업의 리스크관리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기업의 자금조달과 차환가능성에 대한 규제를 신속하게 풀어야 한다.

96년 하반기의 유상증자요건 강화로 현재 상장사의 50% 이상이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이 봉쇄되고 있고 유상증자 금액의 40% 이상이 4~5개 그룹과
금융기관에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유상증자요건을 완전 폐지하되 1개사당 최고 1천억원으로 제한되어
있는 발행한도를 5백억원으로 하향조정하면 증시의 물량압박도 해소하면서
상장기업의 증시를 통한 양질의 자금조달이 가능해져 기업의 신용도 제고및
재무구조 개선도 가능해진다.

기업의 신용도제고및 재무구조개선도 가능해지고 상당수의 기업이
신용공황의 위험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과거에 안정된 자금확보수단으로 인식된 회사채의 차환가능성약화도
신용경색의 중요한 현안과제다.

금융기관들에는 단기 금융채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을 허용하면서 기업은
3년이상의 회사채 발행만 인정(97년7월1일부터 1년 회사채 허용)하고 있어
금융기관들에 3년이란 장기간이 리스크관리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게다가 증권회사의 회사채 보증업무금지까지 겹쳐 신용경색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빨리 기업의 회사채 발행기간(1년까지 허용)에 대한 규제를 풀고 증권사의
회사채 보증업무금지 시행시기도 한시적으로 2년 정도 연장해야 한다.

아울러 중소기업의 연쇄도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담보여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즉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을 통해 1년정도의 한시적인
기간동안 현재 사용하고 있는 보증잔액의 50% 정도를 증액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신용보증기관의 대지급금을 축소시키는 데도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 기아그룹의 사례에서 보듯이 금융기관 등 채권자도 기업이 죽으면
금융기관도 죽는다는 사실을 직시하여 여신회수를 중단하고 기업의
자구노력을 도와주는 컨설팅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기업을 죽이고 자신만이 살려고 한다면 결국에는 공멸의 길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기존여신에 대해서도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자구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금리의 하향부과 출자전환 등을 시행하여 실질적인 지원을 통한
기업회생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 역시 금융기관의 이러한 조치에 걸림돌이 되는 사항을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셋째 금융기관 입장에서 법정관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부도방지협약 역시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부도방지협약 가입대상을 진성어음 거래처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함하고
기업실질내용에 대한 실사 역시 신용평가 기관에 맡길 것이 아니라 기업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 채권자 대표(10개 정도)의 심사역을 투입하여
15일내에 마쳐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거래기업의 부실에 대해서도 지점장 등 개인에 대한 문책이
아닌 금융기관 경영자임기와 금융기관의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금융기관 창구의 경색도 해소할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