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어음부도율은 90년이후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쓰러지는 기업보다 신생기업수가 많다고 자위해왔다.

또한 95~96년까지는 건설업과 유통업에 종사하는 중소 개인기업의 부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주택 2백만호건설의 후유증과 비효율적인 유통부문의 혁신과정이었으며
파장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이후 철강, 자동차 등 주력산업에 종사하는 법인기업들이
쓰러졌으며 최근에는 10대기업내의 기업군마저 부도방지협약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경기침체기가 구조조정의 호기라는 말처럼 부도기업의 속출이 빠른
구조조정의 소산이라면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노동, 금융 등 각 요소시장이 비탄력적이고 기업의 퇴출과
인수합병도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경기수축 국면이었던 지난 1년간 당국의 통화공급은 비교적 탄력적이었다.

지난해 하반기이래 총유동성(M3)의 증가속도는 둔화되고 있으나 관리지표인
총통화(M2)증가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20%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실물부문의 위축으로 물가압력도 낮아지고 있으므로 실질통화공급이
그만큼 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데도 추가적인 부도와 금융경색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통화공급경로에 개선할 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즉 금융시장의 안정과 자금가용성의 확대가 절실한 현재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관련하여 고전적인 의미의 상업어음재할인제도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가 통화가치 안정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지폐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경제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의
양을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통화관리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통화가치안정에 못지않게 중요한 중앙은행의 기능은 실물부문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금융흐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시중자금시장이 경색국면에 있는지의 판단은 중앙은행의 몫이다.

그러나 만일 금융경색을 인지하고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고 있다면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금융부문이 실물부문의 원활한 활동을 지지하도록 필요한 경우,
최종대부자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앙은행 본연의 기능에
속한다.

금융억압과정을 거쳐 시작된 금융자유화는 아직 정착되지 못하였다.

국내자본시장의 심화과정도 더딘 진행을 보이고 있다.

직접금융시장의 여건도 취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자본시장개방의 조기추진일정에도 불구하고 국내기업의 간접금융
의존은 당분간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시중은행들근 과거 압축성장을 위한 관치금융하에서 수동적인 자금배분
역할에 치우쳐 실물부문에 비해 낙후되어 왔다.

이에따라 상업은행 본연의 기능인 상업어음할인을 통한 실물부문에의
자금공급마저 원활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자금조달원이 제한된 기업이 간접금융에 의존하듯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의
재할인자금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과중한 정책금융의 부담이나 공개시장조작여건의 미성숙
등 현재의 통화관리여건을 고려하여 재할인이자율을 경직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할인규모를 제한하는 형태로 재할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규제그리하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자금을 배분하는 정책적 틀에
적합한 운영방식이다.

즉, 실세보다 현저히 낮은 재할인이자율을 적용하여 의도하는 부문에
일정한 양의 자금을 공급하는 직접규제적 통화공급관리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하에서는 특정부문을 제외하고는 자금의 가격과 가용성면에서
모두 제약을 받음으로써 실물부문의 왜곡과 그에 따른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우리 시중은행은 경쟁적인 금융시장에서 자금의 수요와 공급을 효율적으로
매개하는 상업은행으로서의 역량을 쌓을 충분한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시중은행이 어음할인재원의 상당부분을 중앙은행의 재할인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은 도식적 통화관리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기업은 매출채권의 유동화에 실패하게 되고
흑자도산이라는 위험에 노출된다.

특히 현재와 같이 은행을 비롯한 제2, 3금융권이 신용공급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진성어음 재할인비율 제고를 통한 실물부문의
자금가용성 확대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제1금융권자금에 대한 초과수요가 존재하는 여건에서 한국은행이
정책자금이나 총액대출한도를 운영한다거나 지준율의 점진적 인하추세
등 중장기적 통화관리부담요인을 안고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단기적이고 탄력적인 상업어음 재할인비율의 운용이 최종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의 방만한 통화관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매출채권의 유동화를 통해 실물부문의 자금가용성을 제고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되 재할인금리의 실세화를 도모한다면, 자금이 실물부문의
신장폭를 넘어 방만하게 공급되지는 않을 것이다.

즉 자금공급면에서 양적규제가 완화되는 경우 재할인금리는 현재의
시혜적 성격을 배제하고 실세금리를 반영토록함으로써 자금수요에 제약을
가하는 조정변수로 작동할수 있다.

이같이 양적지표관리방식에서 벗어나 가격지표관리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실물부문의 단기적 자금경색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뿐만 아니라 간접규제
통화관리방식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