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많은 여자들과 동침을 했을 생각을 하니 도무지 구역질이 난다.

그러나 넌 뭐 처녀냐?

옥경이 너는 그가 결혼을 원했을 때 무엇을 주었어?

목숨을 걸고 덤벼든 그에게 자기가 준 것은 차 한대와 아버지와 사내
동생들의 공갈 협박이었고 그가 그런 곤경에 처했을 때도 그녀는 그에게
섹스만을 요구했지 진정한 사랑을 주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그는 골프코치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벌, 사회적 신분, 가문 어느 것으로도 지영웅은 그녀의 남자로 적격이
아니었다.

지영웅은 그것을 느꼈고 울분속에서 그녀에게 최선을 다해 봉사했다.

그가 줄 것은 육체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신은 사랑을 주고 있다.

권옥경이 김영신보다 젊다고 하더라도 영신처럼 남자를 사랑할 줄은
모른다.

그녀는 영신처럼 겸손하고 따뜻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할 말이 없는 것 같애"

"언제나 권여사님이 말하고 나는 듣는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어럽쇼, 언제부터 지코치가 이렇게 시니컬하게 되셨을까?

"지코치가 연상의 레이디와 골프장에 자주 나타났었다는 소식은 들었지.
그게 도대체 누굴까?"

"궁금할 것도 없으실텐데요"

"지영웅씨, 그대는 골프 다음으로 나를 사랑한댔잖아"

그녀는 체육을 전공한 여자답게 테크닉없이 말한다.

"네, 나와 결혼하려고 권여사가 결심했을 그 무렵에는 그랬습니다"

사실 그녀는 그와 결혼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다만 사랑의 포로가 되었을 적에 그렇게 가장하며 열렬히 이혼을
원하지만 집안사정이 그렇지 못 하다는 것을 과시했을 뿐이었다.

그것을 직감한 지코치가 오히려 더 결혼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난 날의 꿈이고 빛바랜 추억이다.

그녀를 마지막 만난지 불과 석달만에 그들의 육체로 맺어졌던 사랑은
그렇게 쉽게 지난 날의 빛바랜 추억으로 남았다.

"이번 남미여행에서 기막히는 진리를 하나 배웠습니다"

지영웅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주 매력적인 얼굴을 만들면서 옥경이 경청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도망친 남자가 이렇게 근사하게 느껴진 것은 옥경의
역사속에는 없는 일이다.

그만큼 지코치는 사나이로서의 특별한 육체적 매력을 타고났는지 모른다.

그와 한번 동침을 한 여자는 그를 잊지 못한다.

이것은 정말 거짓말같은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을 반인반수라고 했던가.

아직 아이를 나을 수 있는 삼십대의 그녀는 지금의 남편보다 그를
선택하지 못했던 얼마전의 사건이 자기의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고
속으로 통곡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