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옥경은 광적으로 되면서 그를 바라본다.
어느모로 보나 자기 남편과 자기보다는 지영웅 코치와 그녀가 어울리는
한쌍이다.
더구나 자기가 이혼만 한다면 지영웅은 권옥경이네가 하는 수원의
골프장 책임자가 될 수도 있다.
권옥경은 화끈한 성격대로 냉랭해진 과거의 애인 앞에서 물불을 안
가리고 대시한다.
"정말 자기 나를 떠난거야?"
"..."
지난 어느 날의 처절했던 사랑의 순간들이 떠오르자 옥경은 울고 싶었고
지영웅은 타이밍이 안 맞는 것에 대한 서글픔을 느낀다.
나이도 권옥경이가 영신보다 훨씬 아래다.
그리고 그녀와 정말 결혼을 하고 싶었던 적도 있다.
아니 결사적으로 그녀를 거액의 복권처럼 간직하려고 노력을 한 적도
있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영신보다 훨신 섹시한 레이디다.
그러나 그는 지금 영신같이 어머니같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가 좋다.
그는 가능성이 있는 여자와는 결코 돈을 안 따지고 사귀었었다.
그것 자체가 계산이었지만 그는 노련한 지글러였으며 김치수 회장과
권옥경의 아버지는 서로 여러개의 기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경쟁적인
부자들이었다.
막상막하의 부를 거머쥐고 있는 다크호스들이었다.
섹스는 영신이 그녀보다 못 하지만 영신은 마음이 부드럽고 낙천적이고
충분히 남자를 존중해주는 아주 부드러운 여자다.
물리적으로 먼저 계산하는 데에 익숙한 지영웅은 아직도 김영신에게는
새로운 신비감같은 것과 함께 그녀야말로 자기 개성에 잘 맞는 여자라고
계산한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살아도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쪽은
오히려 권옥경이다.
튕겨보자.
그는 자기의 만신창이가 되었던 자존심을 조금은 되찾아보고 싶다.
지영웅이 침묵속에 빙그레 웃자 용기를 낸 권옥경이 갑자기 폭포처럼
쏘아댄다.
"도대체 나를 때려눕힐 만큼 대단한 여자가 누구야? 정말 궁금하네"
"누구라고 하면 알 수도 있겠지요. 그냥 노는 여자가 아니고 사업가예요"
그러나 나이가 당신보다 많다고,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결혼까지 해낼 수 있는 여자냐구?"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닐까요?"
"유부녀의 샛서방이나 하면서 청춘을 보내서야 너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
"그 여자는 나때문에 이혼을 해요"
"무시무시한 풍경이네 그래"
그녀는 벌떡 일어서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다.
지가 아무리 새 애인이 생겼더라도 일억넘는 700시리즈 비엠더블류를
받고 너무하지 않은가?
이 치는 정말 소문처럼 레이디킬러 아닐까?
권옥경은 아직 그를 지글러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단순한 레이디킬러가 아니고 지글러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갑자기 토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