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말기의 권력누수로 국정이 표류하고 있다.

경제가 위기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경제부처는 무책임한 자존심만
내세우며 "알아서 하라"고 버티고 있고 정치권은 대선에 정신이 팔려 본업인
입법은 미룬채 줄서기에만 여념이 없다.

부처간에 갈등이 생겨도 이견이 조정되지 않는데다 눈치볼 곳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각종 현안처리와 법률제.개정이 하염없이 미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기아자동차 사태가 대표적인 사안으로 재정경제원은 "개입할 일이 아니다"
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불안감이 확산돼 대기업의 어음도 할인이 안되고 국제금융기관
들은 한국의 은행및 공기업의 신용도를 하루가 다르게 깎아내리고 있는데도
재경원은 "직접지원은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에 어긋난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응하지 않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정부가 실제로 WTO를 의식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얼마 남지
않은 임기동안 원칙에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더 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청업체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았으나 금융기관에 정부의 말발이 먹혀들지
않아 현장에선 여전히 애로를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개혁차원에서 내놓은 각종 제도개선책과 법안들도 백지화되거나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금융실명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한 금융실명제 대체입법안과
자금세탁방지법안은 국회가 보류시켰다.

보완해야 한다는 이유였지만 정치자금 쓰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더 큰 이유로 보인다.

중앙은행제도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도 정치권에선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행정부 내에선 부처이기주의로 중장기과제들이 논쟁만을 거듭하고 있다.

<>소매점에서의 의약품 판매 <>설계시장 개방 <>각종 영향평가제도 통합
<>국내외 가격차가 큰 농산물에 대한 민간직수입 허용등은 관련부처가
반대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학설립 자유화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인력개발체계 개편안은 나오자
마자 교육부와 노동부가 반론을 내놓았고 <>세제개혁을 위한 목적세 통합엔
관련부처 모두가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경제계는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행태를 한마디로 정권말기적인
레임덕 현상으로 보고 있다.

상황을 책임지고 틀어쥐는 곳이 없어 자기주장만 내세운다는 지적이다.

경제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위기감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도력의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게 한결같은 요구다.

< 김성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