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린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순경이 와서
다짜고짜 파출소로 데려갔다.

나쁜 짓을 했다고 고발해온 사람이 있으니 조사를 해야겠다는게 이유였다.

며칠동안의 심문과 집안수색에도 물증을 찾는데 실패했다.

그러자 잘못한 것은 없는데 앞으로 잘못을 저지를지도 모르니 수갑만은
벗겨주지 않았다.

허구같지만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산 D램 덤핑판정을 둘러싸고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죄없이 당하는 어린이는 한국의 반도체업체들.

순경은 미국 상무부, 고발자는 미국의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5년동안 계속된 D램 덤핑규제의 질곡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하며 발표
예정일인 16일부터 이틀간을 뜬눈으로 세운 반도체업체 관계자들에게 18일
새벽 워싱턴으로부터 날아온 소식은 덤핑규제철회불가였다.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업체의 주장은 간단하다.

잘못한게 없으면 풀어줘야 한다는 것.

앞으로 잘못할지 모르니 수갑을 채운다는 것은 누가보더라도 "웃기는"
얘기라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반덤핑규제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미국은 연례재심에서 3년연속 미소마진판정을 받은 14건의 케이스중
12건에 대해 규제를 철회했다.

나머지 2건은 재심기간중 자료를 조작하는 등 한국의 반도체와 전혀
상황이 다른 것이었다.

업계가 미국의 불공정한 판정에 울분을 참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얘기다.

한국업체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어렵게 미국시장을 개척하는 동안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흑자는 눈덩이처럼 불어가고 있다.

정부와 업계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히 요망된다.

김낙훈 < 산업1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