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화폐의 도안을 얘기할때 통상 주화보다는 은행권의 도안을 지칭하는
것처럼 화폐도안의 역사도 은행권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할수 있다.

오늘날의 은행권 개념과는 다르겠지만 지폐(종이로 만들어진 돈)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사용된 것은 지금부터 1천여년전인 10세기말 중국 송나라의 진종
재위시절(998~1022)이었다.

당시에는 화폐로 철전이 사용되고 있었으나 유통상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종이에 철전의 양과 금액을 기재한 지폐를 만들어 철전을 대신해 사용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지폐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지폐도 일정한 크기와 모양을 갖추고 금액의 표시도 있었지만 도안
으로서는 매우 조잡한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은행권은 17세기에 영란은행이 설립되면서 비로소 발행
됐는데 이 시기의 화폐도안도 별다른 문양이 없이 금액을 표시하는 숫자와
상환조건을 나타내는 문구만으로 이뤄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렀다.

화폐도안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이후인 19세기부터였다.

이때부터 화폐도안은 종전의 문자위주에서 벗어나 그때까지 볼수 없었던
인물 자연경관 건물 등으로 소재를 확대해갔다.

금액을 표시하는 문자나 화폐의 윤곽처리에 있어서도 화려한 장식문양들이
사용돼 귀족적인 품위를 지니게 됐다.

물론 이러한 화폐도안의 비약적인 도약은 산업혁명이후 기계문명및 인쇄기술
발달의 결과였다.

종래의 석판이나 철판에 의한 인쇄방식에서 동판이나 요판을 이용한 인쇄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정교하고 미세한 인쇄처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20세기 중반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중앙은행의
설립이 일반화되고 새로운 은행권도 봇물처럼 발행됐고 도안의 양상도 매우
다채롭게 나타났다.

종래의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시각적인 화려함과 실용적인
면을 잘 조화시킨 현대적인 감각의 화폐도안이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과 병행하여 도안의 소재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과거에는 정치가
등 권력가들이 인물소재로 많이 사용됐으나 문화예술가들이 이들을 대체해
갔다.

여기서 한걸음 더나아가 도안의 주소재에 있어서도 각국에 특유한 동식물을
사용, 도안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한편 90년대들어 컬러복사기및 컴퓨터 스캐너의 보급이 확대되고 이를
이용한 지폐위조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각종 위조방지장치도 덩달아 등장하고
있다.

도안의 구성요소로소의 위조방지장치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따라 도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각종 문양은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갈수록 복잡하고 정교해지고 있으며 시각적 조형미
외에도 탁월한 위조방지효과를 거두고 있다.

여운선 < 한국은행 발권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