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퇴진하라. 국민의힘은 국민의 적!”11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이날로 5일차를 맞았다.이날 거리에는 5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집결했다. 국회의사당역 5번출구부터 여의공원로까지 약 450m를 가득 채웠다. 섭씨 0도의 차가운 날씨에 시멘트 바닥에 앉아 구호 제창을 이어갔다.집회는 이날 발족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했다. 윤 대통령 탄핵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의힘을 향한 분노는 더욱 커졌다. 시민들은 ‘윤석열은 퇴진하라’ 외에도 ‘국민의힘 퇴진하라’는 구호를 반복적으로 제창했다. 한 자유발언자는 강단에 올라 “이 정권을 내 손으로 투표해서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기도 했다.이날 집회는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실시간 상황을 중계하거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시민도 있었다. 자유발언 모니터에는 수어 통역도 함께 진행됐다.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포함한 일가족 시민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아버지는 “자녀가 자랄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나왔다”며 “어떤 게 옳고 그른 것인지 직접 알려주고 싶어서 이틀째 온가족이 함께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대학교 4학년 친구 세명이 함께 나오기도 했다. 취업을 준비하다가 오늘 처음 나왔다는 A씨(25세)는 “계엄 당일 큰 두려움을 느꼈고, 크게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에 길거리로 직접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다”며 “당장 나의 취업을 준비하기도 바쁘지만, 계엄은 머지 않은 미래
방송인 김어준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군을 피해 36시간 동안 은신했었다고 밝혔다.김어준은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계엄령 선포 당시 집에 있었는데 내가 위험에 처했다는 첩보를 들었다"며 "계엄 해제 이후에도 36시간 동안 조용히 지냈다. (그땐) 내가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서울에 있는 김어준의 스튜디오 밖에는 경비원이 서 있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비상계엄 선포 이후 4일 오전 0시40분께 김어준이 대표로 있는 '여론조사 꽃' 사무실 인근 폐쇄회로(CC)TV에는 군인 20여명의 모습이 포착됐다.군 계엄령에는 언론을 통제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는데, 좌파 성향에 반체제 성향을 가진 김어준이 유일하게 표적이 됐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김어준은 당시 상황에 대해 "버스 두 대, 트럭 한 대, 지휘 차량 한 대, 카메라에 잡힌 무장 계엄군 몇 명이 사무실에 도착했다"며 "체포팀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이 우리 사무실을 손에 넣으려 했다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 회복력이 더욱 강화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세 시간 전에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삼청동 안전가옥으로 불러 사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검찰 등에 따르면 조 청장과 김 청장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특별수사단 조사에서 비상계엄 직전에 대통령 안가에 갔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청장과 김 청장은 내란죄 혐의로 특수단에 출석해 진술한 후 이날 새벽 긴급 체포됐다.비상계엄 선포를 세 시간여 앞둔 지난 3일 오후 7시께 삼청동 대통령실 안가에서 윤 대통령은 조 청장, 김 청장과 만났다. 이 자리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배석했다. 윤 대통령은 A4용지 한 장짜리 지시사항을 조 청장에게 전달했다. 계엄 발표 시간과 국회, 언론사 등 열 곳의 접수 대상이 명시돼 있었다고 한다.조 청장은 “계엄령 발표 후 윤 대통령이 여섯 차례 전화를 걸어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특수단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국회에선 오는 14일 탄핵소추안 재표결을 앞두고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한동훈)계 의원을 중심으로 줄줄이 투표 참여 의사를 밝혀 여권의 탄핵 반대 ‘단일대오’가 사실상 무너지고 있어서다.조철오/정소람/박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