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캐피털리즘 재발견] (4.끝) '벤처기업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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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김종훈씨.
92년 그는 40만달러를 들여 메릴랜드주 레넘시에 멀티미디어
정보전달장비를 생산하는 유리시스템조사를 설립했다.
지난 2월 이 회사는 IPO (주식공개시장)에 나갔다.
김사장의 재산은 1억6천8백만달러로 불어났다.
일약 거부가 된 것이다.
벤처기업가 로버트 롱씨는 8년전 대학을 갓 졸업하자마자 실리콘밸리에
퍼스컴 (PC) 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회사는 3년만에 도산했다.
그에게 뒷돈을 대줬던 벤처 캐티털리스트도 2천만달러를 날렸다.
한 1년정도 방황하던 그에게 또 유혹의 손길이 뻗쳤다.
거액을 날렸던 그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이번에는 신형반도체 칩회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새 회사는 올초 룡씨가 "오매불망"하던 나스닥 (NASDAG)에 등록됐다.
미국에서 연간 20만개의 신기업이 탄생하고 또 그에 가까운 숫자의
기업이 소리 소문없이 스러져간다.
노화된 세포가 없어지고 새 세포가 그 자를 메꾸는 게 생명의 과정이듯,
미국 경제의 활력은 이들 개별 기업들의 끊임없는 유입과 퇴출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도 벤처기업은 아메리캐피털리즘의 상징이자 미국 경제의
뿌리다.
벤처기업의 다산다사-.산업의 신진대사를 이렇게 왕성하게 만드는 것은
사스닥 (NASDAQ) 같은 창업기업 전문 주식시장이다.
나스닥의 경우 매년 6백~8백개에 달하는 업체가 신규 등록하는 한 켠으로
상장이 폐지되는 기업도 3백~5백개에 달한다.
미 최대의 창업투자회사 클라이너 퍼킨스사 투자사례에서도 "다산다사"를
읽을 수 있다.
이 회사에 매년 2천여건 들어오는 투자신청건 가운데 최종투자에까지
가는 벤처기업은 3~4%.
이중에서도 또 37%가 파산한다.
이렇게 다사하는데 어떻게 다산이 될까.
아시안 벤처 캐피털 포럼에 참석차 산호세 출장중이었던 김영준
LG창업투자 사장은 그 이유로 "패자부활의 기업 토양"을 든다.
"미국은 기업실패의 경험이 신용실추가 아닌 재기의 경험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처 캐피털이 창업 기업인과 실패의 책임을 나눠 갖는 분위기도
벤처기업의 다산을 가능케 만들고 있다.
한번 히트만 쳤다하면 거액의 "창업이윤"을 거머쥘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선 벤처기업 투자를 곧잘 경마에 비유한다.
경주에 나서는 말은 제품이다.
레이스는 시장의 조건, 내기에서 이길 가능성은 사업의 예상수익이다.
그러나 투자가들이 "판돈"을 걸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역시 기수,
벤처 기업인의 자질이다.
그들이 제일로 치는 자질은 벤처기업 연구로 유명한 미 뱀슨대학의
론스타드 교수가 말하는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이란 빨간 신호등 앞에서도 때로는 이를 무시하고,
돌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업가 정신은 스스로 사업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이를 자기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조건의 "기수"라면 40%의 확률만 있어도 "눈 딱 감고" 투자한다는게
미국 창업투자업계의 정설이다.
사실 미국에선 모험심 있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벤처기업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대학 졸업후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다가 나이가 들어 창업하는 예는
상대적으로 적다.
실리콘 밸리의 모태가 된 스탠퍼드대학 교수들의 말을 빌리면 "가장
우수한 학생은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고 기업을 한다.
그 다음으로 우수한 학생은 졸업후 창업전선에 나선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아주 평범한 학생들이다".
벤처기업을 차리는 것이 식사를 하거나 스포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행위라는 얘기다.
"언젠가는 나도 빌 게이츠가 될 것이다.
2001년엔 IPO에 나가 소프트왕국을 이루겠다"라고 털어놓는 실리콘
밸리의 한국계 컴퓨터 소프트웨어업체 밀란 리사장.
새벽 3~4시까지 죽도록 일에 매달릴 수 있게 만드는 그의 꿈은
아메리캐피털리즘적 풍토가 있기에 가능한 것임에 틀림없다.
벤처기업으로 경제를 되살리려는 한국의 정부.
미국의 예를 보면 정부가 호들갑 떨일도 아니다.
"이래라 저래라"간섭말고 "고위험-고수익"을 전제로 각종 제도를 정비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기업가 정신을 부추기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진정한 자본주의 국가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 류화선 한경자동차신문 국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1일자).
92년 그는 40만달러를 들여 메릴랜드주 레넘시에 멀티미디어
정보전달장비를 생산하는 유리시스템조사를 설립했다.
지난 2월 이 회사는 IPO (주식공개시장)에 나갔다.
김사장의 재산은 1억6천8백만달러로 불어났다.
일약 거부가 된 것이다.
벤처기업가 로버트 롱씨는 8년전 대학을 갓 졸업하자마자 실리콘밸리에
퍼스컴 (PC) 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회사는 3년만에 도산했다.
그에게 뒷돈을 대줬던 벤처 캐티털리스트도 2천만달러를 날렸다.
한 1년정도 방황하던 그에게 또 유혹의 손길이 뻗쳤다.
거액을 날렸던 그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이번에는 신형반도체 칩회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새 회사는 올초 룡씨가 "오매불망"하던 나스닥 (NASDAG)에 등록됐다.
미국에서 연간 20만개의 신기업이 탄생하고 또 그에 가까운 숫자의
기업이 소리 소문없이 스러져간다.
노화된 세포가 없어지고 새 세포가 그 자를 메꾸는 게 생명의 과정이듯,
미국 경제의 활력은 이들 개별 기업들의 끊임없는 유입과 퇴출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도 벤처기업은 아메리캐피털리즘의 상징이자 미국 경제의
뿌리다.
벤처기업의 다산다사-.산업의 신진대사를 이렇게 왕성하게 만드는 것은
사스닥 (NASDAQ) 같은 창업기업 전문 주식시장이다.
나스닥의 경우 매년 6백~8백개에 달하는 업체가 신규 등록하는 한 켠으로
상장이 폐지되는 기업도 3백~5백개에 달한다.
미 최대의 창업투자회사 클라이너 퍼킨스사 투자사례에서도 "다산다사"를
읽을 수 있다.
이 회사에 매년 2천여건 들어오는 투자신청건 가운데 최종투자에까지
가는 벤처기업은 3~4%.
이중에서도 또 37%가 파산한다.
이렇게 다사하는데 어떻게 다산이 될까.
아시안 벤처 캐피털 포럼에 참석차 산호세 출장중이었던 김영준
LG창업투자 사장은 그 이유로 "패자부활의 기업 토양"을 든다.
"미국은 기업실패의 경험이 신용실추가 아닌 재기의 경험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처 캐피털이 창업 기업인과 실패의 책임을 나눠 갖는 분위기도
벤처기업의 다산을 가능케 만들고 있다.
한번 히트만 쳤다하면 거액의 "창업이윤"을 거머쥘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선 벤처기업 투자를 곧잘 경마에 비유한다.
경주에 나서는 말은 제품이다.
레이스는 시장의 조건, 내기에서 이길 가능성은 사업의 예상수익이다.
그러나 투자가들이 "판돈"을 걸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역시 기수,
벤처 기업인의 자질이다.
그들이 제일로 치는 자질은 벤처기업 연구로 유명한 미 뱀슨대학의
론스타드 교수가 말하는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이란 빨간 신호등 앞에서도 때로는 이를 무시하고,
돌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업가 정신은 스스로 사업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이를 자기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조건의 "기수"라면 40%의 확률만 있어도 "눈 딱 감고" 투자한다는게
미국 창업투자업계의 정설이다.
사실 미국에선 모험심 있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벤처기업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대학 졸업후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다가 나이가 들어 창업하는 예는
상대적으로 적다.
실리콘 밸리의 모태가 된 스탠퍼드대학 교수들의 말을 빌리면 "가장
우수한 학생은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고 기업을 한다.
그 다음으로 우수한 학생은 졸업후 창업전선에 나선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아주 평범한 학생들이다".
벤처기업을 차리는 것이 식사를 하거나 스포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행위라는 얘기다.
"언젠가는 나도 빌 게이츠가 될 것이다.
2001년엔 IPO에 나가 소프트왕국을 이루겠다"라고 털어놓는 실리콘
밸리의 한국계 컴퓨터 소프트웨어업체 밀란 리사장.
새벽 3~4시까지 죽도록 일에 매달릴 수 있게 만드는 그의 꿈은
아메리캐피털리즘적 풍토가 있기에 가능한 것임에 틀림없다.
벤처기업으로 경제를 되살리려는 한국의 정부.
미국의 예를 보면 정부가 호들갑 떨일도 아니다.
"이래라 저래라"간섭말고 "고위험-고수익"을 전제로 각종 제도를 정비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기업가 정신을 부추기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진정한 자본주의 국가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 류화선 한경자동차신문 국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