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가 망명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은 우리사회에
만연된 안보불감증에 다시한번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황씨가 북한체제의 핵심인물이었던데다 망명동기와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를 둘러싸고 한간에 구구한 추측이 많았던 터여서 그의 기자회견은
흔히 보아온 다른 "탈북자"들의 회견과는 달리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공개회견의 성격상 그가 알고 있을법한 고급정보들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대로 대부분의 관심사항에 대한 그의 답변은 국민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기에는 미흡했던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관심의 초점이 돼온 황장엽리스트에 관해 안기부나 황씨 모두
"리스트"의 존재 자체는 부인하면서도 남한에서 임약중인 북한 지하조직에
관한 진술이 있었음을 시인함으로써 앞으로 수사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남한내 친북세력에 대해서도 엄정한 수사가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호아씨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다만 만에 하나 친북세력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카드로 이용하려 한다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점을 수사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전쟁준비상황에 대한 증언은 새삼스런 것은 아니지만 북한체제의
핵심인사가 다시한번 이를 확인함으로써 김정일의 노골적인 남침야욕과
남한내부 와해음모가 더욱 생생하게 전달됐으리라고 믿는다.

특히 한국군이 북침한 것처럼 위장극을 꾸며 전쟁을 일으킨 후
5~6분만에 서울을 "잿가루"로 만든뒤 미국이 증원되기 전에 부산까지
점령한다는 전쟁시나리오에 대한 황씨의 증언은 우리의 안일한 대북태세를
일깨우는 경보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북한에 전쟁수행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핵무기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남한 동포들에게 전쟁의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고 오늘의 엄중한 상태를
보고만 있는 것은 민족을 배반하는 범죄라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는
황씨의 말은 오늘날 이 사회의 지도자 모두가 느껴야할 가책이 아닐까 한다.

지금처럼 사회지도층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팽배한 상태에서 돌발사태라도
벌어진다면 우리의 지도층이 이를 감당해낼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수 없다.

"전쟁은 꼭 한번 한다는게 북한의 방침"이라는 황씨의 증언은 "결정적
사태"에 대비하라는 중대한 경고로 들린다.

개방을 통해 북한을 연착륙으로 유도하려는 정책은 우리와 미국등의
공식적인 대북정책의 기조일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아 북한의 연착륙은 불가능할 수도 있음을 황씨의
증언을 새삼 일깨워준다.

우리는 항상 이 후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대비태세를 다져야
한다.

황씨의 망명과 증언이 여러가지 추측과 해석을 낳고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가 강조하는 북한의 무력도발위험성은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할
귀중한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