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충남도는 최근 아산만에 위치한 항만의 명칭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경기도는 항만의 이름을 "평택항"으로 하자고 주장하고 충남도는 "아산항"
으로 해야 한다고 맞섰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충남도 15개 시.군의회 의장협의회가 평택항 명칭을 아산항으로
변경키로 결의하자 평택지역 주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궐기대회를
가졌다.

결국 항만의 이름은 두가지 모두 다 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항만 입출항이나 운영에 관해서는 항만법 시행령에 따라 "평택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항만개발이나 민자유치시에는 "아산항"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그러나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항만의 명칭은 항만 물동량 유치를 위한
홍보전략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2개의 명칭을
사용한다면 외국을 상대로 한 해운항만 관련 영업에 혼란을 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이 사건은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와 이에 편승한 지자체, 일단 지역간
갈등만 무마하고 보자는 정부부처가 합작해 만들어낸 근시안적 행정의
표본이 되고 말았다.

민선자치시대 2년을 맞이하면서 이와같은 지역이기주의로 정책이 표류하고
국가사업이 후퇴하는 일이 잦아졌다.

자치라는 미명하에 지자체는 공익성과 효율성을 무시한채 지역 주민들의
편만 들고 중앙부처는 무책임하게 뒷짐만 지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경기 인천 등 3개 수도권 광역자치단체간 갈등도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이들 3개 단체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은 경계지역의 도로개설과
수질개선 문제 등 모두 11가지나 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평촌 신도시~신림동간 도로 개설의 경우 경기도가 이를 서울시에
제의했으나 서울시는 "가뜩이나 혼잡한 남부 순환도로가 교통체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일축해버렸다.

서울시는 천호대교와 구리시 토평동간 도로를 개설하자고 경기도에
제의했으나 경기도가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거부해 갈등이
첨예화됐다.

이와함께 서울 부천 인천을 경유하는 경인우회도로 건설도 세 광역정부의
입장이 서로 달라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골칫덩이로 떠오르고 있는 경부고속철도 사업에서도 지역이기주의는
여지없이 나타났다.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중간정차역 요구가 그것이다.

92년 6월 착공 때까지만 해도 경부고속철도는 "서울~천안~대전~대구~경주
~부산"의 6개역이 전부였으나 1년뒤 남서울역이 추가된뒤 남서울과 천안
사이에 경기남부역, 천안과 대전사이에 오송역 등이 추가됐다.

이외에 경북 김천, 경남 울산, 부산 부전역 등 추가로 정차역을 요구하는
지역들이 아직도 많아 "고속철"은 "저속철"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에는 건교부가 중간역 위치선정 과정에서 가능한 한 잡음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덮는데만 신경을 써온게 화근이었다.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많아질게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지방 정치인은 해당 관할구역의 토박이로 주민의 이해관계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무게중심이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주민의
이익에 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을 위해 지역이기주의를 사전에 차단하고
조정하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그 언제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려대 행정학과 최흥석 교수는 "국가적인 사업추진시 지역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반영하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며 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며 "지역의 이익보다 국가적인 이익이 더 큰 상황인
데도 주민들의 요구가 지나칠 때는 중앙정부가 제재를 가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