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산업현장의 변화를 가장 실감나게 하는 대목은 전국사업장에서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임금동결선언및 무교섭타결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사경영이 어려운 일부사업장에서 자구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이같은 현상은 올들어 전업종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더욱이 그동안 강성사업장으로 평가받던 대형사업장 노조까지 무교섭으로
임.단협을 마무리하는등 산업현장의 분위기는 하루가 다르게 안정을 찾아
가고 있다.

지금까지 임금동결을 선언한 사업장은 모두 4백73곳.

지난해 같은기간의 1백43곳보다 3배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는 대농 미도파등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업장도 있지만
대한한공 한진해운등 비교적 경영난이 극심하지 않은 대형사업장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같은 현상은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의식변화 때문이다.

그동안 자기몫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기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근로자들은
경기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고통분담차원에서 분배욕구를 자제
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살아야 자기의 몫도 찾을수 있다는 의식이 확산된 결과다.

또한 무교섭타결업체도 지난해보다 5배이상 증가한 1백89곳에 달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기아자동차등 지난해까지 노사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강성사업장들이 다수 포함됐다.

사업장마다 무교섭타결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은 노사교섭과정에서 생길수
있는 교섭비용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회사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일터를 잃고 나면 임금이 오른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창원공단내
기아중공업 임동현 노조위원장)는 반문은 변화되고 있는 근로자들의 의식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노조란 회사로부터 받아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회사를 같이 이끌어가는
동반자라는 의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76억원의 경상이익을 낸 LG금속의 신택기 위원장도 "물론 경영성과
에 따른 임금인상은 필요하지만 회사가 설비증설로 자금부담을 느끼는 점을
감안해 임금동결에 합의해 줬다"고 밝혔다.

다시말해 회사가 성장하면 그때가서 자기몫을 찾겠다는 뜻이다.

근로자들의 이러한 의식변화는 산업현장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4월 임금인상을 회사측에 일임한 창원 한화기계의 장준영 노조위원장은
"노사가 멱살잡고 싸우는 기업이라면 도태할수 밖에 없다"며 "회사가 어려움
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면 노사가 공멸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단언했다.

산업평화를 다짐하는 노사화합결의대회는 현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양상이다.

지난 95년부터 분출되기 시작한 노사화합결의대회는 올해도 국내노사관계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전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들어 지난 6월30일까지 노사화합을 결의한 사업장은 모두 2천23곳으로
70만여명의 근로자들이 산업평화를 다짐했다.

특히 쌍용자동차등 그동안 초강성노조들의 노사화합선언은 정상을 찾아가는
국내 노사관계의 흐름을 한눈에 읽게하는 대목이다.

물론 아직도 임금동결 결의나 무교섭타결,노사화합선언등에 대해 곱지않은
시각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동안 대립과 갈등을 겪으면서 엄청난 피해를 경험한
대다수 근로자들은 이제 "회사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참여와 협력을 통한 생산적 노사관계구축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