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서울 영업부에 다니는 강흥섭씨는 어느 일요일날 가족들과
함께 춘천에 바람을 쐬러나섰다.

부인과 아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미금시 금곡동을 지날 때였다.

신호등에서 기다리는 사이 왼편에 새로 지은 5층짜리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저기에 볼링장을 차리면 엄청나게 돈을 벌겠는데..."

그는 차를 몰아 U턴을 한 뒤 그 건물앞으로 되돌아왔다.

인근 부동산중개소를 찾았다.

다행히 그 빌딩의 지하1층 2백평이 임대물로 나와 있었다.

쾌재를 불렀다.

그는 다짜고짜 건물주를 찾아가 지하 1층을 볼링장으로 임대해줄 것을
부탁했다.

단 현재 가진 돈이 없으니 일단 무료로 임대해주면 벌어서 갚겠다고
간청했다.

나이 57세의 건물주는 임대료를 무료로 달라는 말에 어이없어 했다.

별 이상한 사람 다보겠다는 식으로 피했다.

그럼에도 그는 두달간을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이곳에 볼링장을 차리면 이 건물전체가 유명해져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며 거듭 설득했다.

그의 설득에 못이겨 건물주인은 정말 무료로 임대해줬다.

막상 장소를 확보했으나 그에겐 볼링장을 차릴 시설비가 없었다.

머리를 짜냈다.

설비를 리스로하면 가능할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미국의 브론스윅사로부터 3억원에 이르는 설비를 리스회사를 통해
도입했다.

인테리어비용으로 1억원이 더 필요했다.

8년간 일하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퇴직금과 형에게 빌린 돈으로 인테리어비용을 감당했다.

90년 11월 15일.

그는 갖은 고초끝에 볼링장을 개업했다.

첫날부터 볼링장엔 손님들로 넘쳐났다.

한밤중에도 고객들이 줄이어 기다렸다.

감가상각비를빼고도 월 1천5백만원정도 벌었다.

반년쯤 지났을 때 강흥섭사장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볼링장은 가만이 앉아서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업종이다.

기다리기만 하는업종은 이제 싫다.

스스로 발로 뛰어 고객을 찾아가는 업종을 해보고 싶다"

그는 7개월만에 그렇게도 잘나가는 볼링장을 딴 사람에게 넘겼다.

권리금으로 5억원을 받았다.

그는 이돈으로 92년초 당산동 이강인터내쇼날이란 복층유리 제조설비공장을
만들었다.

더이상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유리가공업계에선 결코 고객에게 달려가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강사장은 전국 어디에서든 고객이 원하면 곧장 달려가는 전략을
폈다.

전화를 받고 어디든 3시간 이내에 달려가 서비스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 전략을 "퀵3"이라고 이름붙였다.

3시간안에 서비스를 못하면 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지난달 영업팀 전체가 출장중이었다.

새벽 2시에 전주에서 설비고장신고가 왔다.

강사장은 한밤중에 차를 몰아 퀵3을 실천했다.

강사장은 이제 더이상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유흥업보단 제조업에 뛰어든 걸 자랑으로 삼는다.

< 중소기업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