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의 종합경제지 한국경제신문은 21세기를 준비하고 세계화 조류를
선도하기 위해 "LA타임스.신디케이트"와 제휴, 세계 각국의 재계.정계.학계
및 언론계 저명인사들의 시론광장인 "글로벌.뷰포인트"를 주1회 독점 전개
합니다.

빌.클린튼 미국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수상,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 소련대통령 등 거물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엘빈 토플러, 폴 케네디, 죤 갤브레이스, 오마에 겐이치 등 세계적 석학들이
직접 집필하거나 또는 저명언론인과의 대담을 통해 제작되는 "글로벌.뷰
포인트"는 세계정치와 경제문제에 대한 이들의 탁견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밖에 폴 볼커 전 미국연방준비이사회의장,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 등도 참여, 세계 각 지역의 정치.경제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 전망할 예정입니다.

지구촌시대를 지향하며 범세계적인 메가트렌드의 현장을 역동적이고 사실감
있게 전달할 ''글로벌 뷰포인트''는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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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케네디 >

최근 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이 클린턴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문제와 관련, 그는 "서방이 동구권을 안정
(stabilize)시키지 못할 경우 동구권은 서방을 불안(destabilize)하게 할
지 모른다"고 말했다.

NATO가입대상을 동유럽으로 확대하라는 사실상의 요구였다.

클린턴이 이에 맞장구를 친 것은 물론이다.

이같은 미국과 동유럽간의 공감대위에 러시아정부는 나토 및 러시아간의
관계를 규정한 새헌장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나토의 동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회원국인 폴란드 체코 헝가리도 조만간
나토의 우산아래 편입될 것이 확실해졌다.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나토확대협약"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렇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1925년 체결된 로카르노조약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조약체결당시 유럽은 제1차세계대전을 끝내고 7년을 흘려보냈지만 패전국
독일이 인접국을 재침략할 것이란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영제국은 이같은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로카르노조약"을 만들어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영국이 독일의 서부경계선과 프랑스 및 벨기에의 동부
국경선을 지켜주겠다는 협약이었다.

영국이 전례없이 국제분쟁참여를 공약한 조약이기도 했다.

당시 이 조약은 제1차세계대전의 잔재를 수습하기 위한 역사적이고도
외교적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로카르노조약은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었다.

위기사태발생시 군사적 대응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듬해 영국 외무부가 합참본부에 로카르노조약과 관련, 영국이
취해야 할 입장을 문의했다.

군부의 답변은 싸늘하고 냉정한 것이었다.

영국군은 로카르노조약 이행을 위해 아무런 행동을 못할 것이며 그저
사태를 주시할 뿐이라는 자세였다.

대영제국의 지상군과 공군은 광활한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이미 전진배치를
완료한 상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영국군은 평화기에 편승, 병력을 대폭 감축한 상태였다.

놀라운 사실은 영국 정치인중 그 누구도 군사력과 외교정책간의 이같은
괴리를 문제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10년뒤 로카르노조약에 구멍이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히틀러가 독일군에 서부 라인란트 비무장지대를 점령토록 명령한 것이다.

영국이 아무런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함으로써 로카르노조약은 휴지가 된
것이다.

이 역사적사실을 상기시키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지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냉전종식 이후 미래의 안보에 대한 부담을 덜고 싶은 욕망에
빠져 있다.

러시아는 구소련붕괴로 인한 참담함과 글로벌공동체에 참가하고픈 기대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구소련 제국주의에 예속됐던 위성국들도 자국안보가 보장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로카르노조약체결 당시의 국제정세와 유사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주연만이 영국 외무부에서 미국 국무부로 바뀐채 "나토확대협약"이 추진된
것이다.

이 협약은 서방동맹국과 미국의 군사적의무를 크게 늘려놓았다.

때문에 우리는 미 국방부와 서방군사조직에 대해 로카르노조약의 상황
에서와 똑같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즉 러시아의 민족주의가 부활돼 새로 형성된 질서에 반기를 들고 나올
경우 서방은 이 새로 체결된 협약을 지켜낼 수 있을만큼 충분한 군사력을
갖췄는가 하는 점은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서방이 옐친정부에 압력을 넣어 NATO확대협약에 합의토록한 것만으로
만사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협약 자체로는 좋지 않은 결과를 막을 수 없다.

러시아는 지금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으며 언제 다시 강경민족주의자들이
소생할지 모르는 상태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로카르노조약에서 제1차세계대전 전승국들의
주장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 등장한 히틀러는 그
조약을 파기해 버린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전쟁발발의 개연성은 남아있다.

때문에 나토확대협약이 "냉전기의 경직된 군사동맹"에서 "평화기 유럽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느슨한 네트워크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이라고 얼렁
뚱땅 넘어가려 해서는 안된다.

나토확대협약은 이제 미의회의 인준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지만 미국인들로
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열쇠를 쥐고 있는 군사전략가들의 입장은 회의감 일색이다.

미 합참본부의 최근 태도는 1925년 당시 영국 합참본부와 비슷하다.

협약 자체는 흥미로운 사태발전이나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는
자세다.

현상황에서 동구보다는 한국이나 쿠웨이트 등 전략적 우선지역을 먼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게 이들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이 폴란드의 동부국경을 보호해주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뜻이다.

더욱이 최근들어 미군병력은 대폭 감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군비축소정책이 지속될 경우 미군은 전세계에 8사단정도만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미군은 서유럽에 소규모 지상군을 주둔시키고 있지만 이 병력을 분쟁발생시
동구지역으로 투입할 수는 없다.

따라서 미국의 향후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내려지기까지 나토확대
협약이 실효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이와 함께 이번 협약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주도면밀한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서방측이 앞으로 수년간 러시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동유럽과
중유럽의 안보는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다루기"는 금세기초 서방측이 로카르노조약체결과정에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를 주무른 것과 비슷한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

정밀한 검토를 필요로 할 만큼 전략적인 중요성도 내포하고 있다.

러시아가 가까운 장래에 공격성을 드러낼 공산은 그리 크지 않다는게
외교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군사전략가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좋은 시절의 시나리오"뿐 아니라 최악의 사태까지 염두에 두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양자의 이런 견해와 입장 차이로 인해 미국의 군사전략과 외교정책간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이로 인해 어떤 결과가 빚어질 것인지는 역사적 선례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지난 19세기 대영제국의 외무부와 국방부간의 시각차를 드러낸 사건이 그
한 예다.

대영제국 외교통들은 대제국건설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우방국에도 큰 소리를 쳤다.

지중해함대를 콘스탄티노플이나 흑해로 파견하면 러시아의 터키침공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이다.

1892년께 해당지역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영국 솔즈베리총리는 그의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앞서 면밀한 검토에
들어갔다.

그런데 해군본부의 대답은 의외였다.

군사력부족으로 이 구상을 실행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솔즈베리총리는 크게 당황했다.

그는 외무부와 국방부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을 추진해 왔음에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큰 재난은 불보듯 뻔하다는게 그의 호통
이었다.

솔즈베리총리가 내린 결론은 "우리의 정책은 자가당착적이다.

이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면 우리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엄청난 불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나토확대협약과 관련, 똑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는 매우 설득력있는
말이다.

서방측은 미국의 미래 군사력에 대해 이처럼 잘못된 가정을 내리고 있지나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나토확대협약과 관련된 외교정책과 군사력사이에 괴리가 없는가 자세히
살펴봐야 할 때라는 뜻이다.

< 정리=유재혁 기자 >

[[ 약력 ]]

<>1945년 영국출생
<>옥스퍼드대 역사학박사
<>영국 왕립역사학회 회원
<>83년부터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중
<>독일 훔볼트재단 및 미국 프린스턴대 진보연구소 초청연구원

<저서> <>''전략과 외교'' (80년)
<>''강대국의 흥망'' (88년)
<>''21세기 준비'' (93년)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