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지저분한 영웅 지코치는 지금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 있다.

미운 민 가이드는 그의 자존심을 북북 긁으면서 그의 약을 바짝 올린다.

"어이 지형, 오늘은 한잔 사시지 그래"

"아르헨티나 술을 마셔보고 싶다구? 그것도 괜찮지요. 그러나 술 살
기분을 먼저 만들어보시지"

"그럼 아직 술을 살 기분이 아니라 그렇게 들리는데, 나는 여행오면
가끔 지형처럼 연상의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아줌마들의 애인과 동숙을
하는데 지형처럼 자린고비는 처음 봤어. 여기 이 그룹은 내 입에
달렸다구요"

민가이드와 지코치는 나이가 비슷하다.

"아니 날더러 깍쟁이라는 말이야? 나 세상나서 처음 듣는 말이 그
자린고비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인데, 이래 봬도 나는 당신처럼 월급받고
일하는 쟁이가 아니라 사업가야. 그래서 그렇게 짠쟁이 노릇은 안 하고
살았어. 자네만 해도 멕시코에서 나에게 데킬라 술을 두번이나 얻어먹지
않았나?"

"그야 김사장 아줌마하고 데이트 장면이 들키면 곤란하니까 할 수 없이
쥐오줌만큼 산거지, 어디 우리 둘이서 한잔 꺾어봤어. 이거 입막은 하려먼
크게 사도 봐줄까 말까 인데 허허허허. 안 그래? 떡대 친구"

요것이 점점 함부로 나오는구나.

너 어디 내 쇳덩이같은 주먹맛 한번 구경하고 싶니? 그의 양미간이
험악하게 실룩거린다.

"이봐 민가, 자네는 지금 투어 가이드이고 나는 손님이지, 내가 자네
손아래 친구인가?"

지코치는 지금 위험수위에 올라갔다.

그가 일단 흥분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컨트롤할 수가 없다.

그의 눈에 흰자위가 많아지면서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다.

"왜 이래? 지형, 골프깨나 치는 친구들 중에 아줌마들하고 골프 투어하는
제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아예 처음부터 탁 터놓고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이이니 눈감아주고 잘 부탁해요 하면 그런 사정 쯤 못 봐줄 것도
없어요.

허나 그렇게 시치미 뗀다고 내가 속을줄 알아. 이봐 지형, 투어 가이드
3년에 남은 것이 눈치밖에 없어. 목터져라 외치고 돌아다니는 신세에
팁밖에 보이는게 없다는 것 쯤은 아실거라 그 말씀이외다"

어디서 무슨 술을 어떻게 얻어먹고 왔는지 약간 혀가 꼬부라져 있다.

지코치는 한대 날려버리고 싶은 것을 꾹꾹 참고 있는데 따르르릉
전화가 온다.

민 가이드가 얼른 전화를 받더니, "이봐요, 지코치. 당신 아줌마요.
히히히히"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