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한명 죽은 걸 갖고 왜 이렇게 야단입니까"

돈암동 한진아파트 옹벽붕괴사건이 난뒤 서울시 모과장이 언급한 한마디다.

그의 말에서 생명의 존엄성이나 귀중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수백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대형사건을 많이 겪어본 서울시 공무원
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공무원들의 인식은 이번 사건의 성격을 인재보다 자연재해로
규정하려는 발상에서도 뚜렷이 엿보인다.

서울시가 분석한 사고의 원인은 하수 또는 표면수처리의 부실.

쉽게 얘기하면 비가 원인인 자연재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옹벽 붕괴사건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봄비는 12일 39.8mm, 13일
73.5mm가 내렸다.

이정도의 강수량은 흔히 시간당 20mm이상의 비가 내릴 때 붙여주는
"집중호우"도 못된다.

드문드문 내린 비로 이 지경이 됐으니 6월말부터 시작되는 우기엔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볼때 서울시의 설명이 견강부회에 다름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고가 이미 예고됐음에도 막지못했다는 점에서 서울시의
안전불감증이 상당히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확인케 한다.

축대가 붕괴되기 직전 주민들은 여러차례에 걸쳐 시와 시공회사에 흙이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개선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묵살당했다.

또 허울뿐인 안전진단은 문제의 아파트단지 재개발을 승인하면서 축대
안쪽의 수압을 검사하지 않았으며 지난해 9월 안전진단때도 축대 안쪽의
토질을 검사하지 않은 것에서도 드러났다.

게다가 일부 동은 세차례나 설계변경돼 13층이 20층으로 늘어났고 준공
검사나 가사용승인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을 입주시키는 등 "행정
부실"이 여러군데서 확인됐다.

조순 시장은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시정을 시작했다.

이번 붕괴사고때도 조시장은 어김없이 현장에 나타났다.

그만큼 서울시에는 붕괴사고가 끊일 날이 없다.

그러나 사고를 바라보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안전 및 책임의식은 아직
요원한 것 같다.

남궁덕 < 사회1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