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에 보도된 통상산업부 조직개편 추진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부가 추진중인 이번 개편안은 크게 보면 국민이 바라고있는 작은
정부를 실현코자 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규제일변도에서 벗어나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역사적 흐름에 순응하기
위한 조치로도 여겨진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적어도 필자 개인생각으로는 되레 그와는
반대의 결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언론에 보도된 개편안에 따르면 기존의 통상산업부의 기초공업국
생활공업국등 양대공업국과 중소기업정책관이 없어지고 산업동향분석국과
산업요소국 투자지원국 등 3개국이 신설된다.

산업동향분석국은 양대 공업국을 통폐합해 기업관련 정보를 파악,
경제부처와 다른 기업에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산업요소국은 노동 환경 교육
금융 토지 등과 관련된 애로를 해소하는 기능을 맡는다고 한다.

그리고 중소기업정책관을 산업정책국에 1개과로 통합하고 투자지원국은
재경원에서 일부 업무를 넘겨받아 외국인 투자유치업무를 전담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60년대초부터 불붙기 시작한 한국의 산업화초기엔 정부의 역할이 분명했다.

예컨대 석유화학 기계 전자 등의 업종에선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각종 진흥법이나 촉진법 등을 제정해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규제-통제
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산업화는 한 사람의 최고통치자와 일부 엘리트
경제관료들에 의해 주도됐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측면이 기업에는 적지 않게 불편한 점으로 작용했다.

생산 설비의 신.증설은 물론 생산 수입-수출관세 가격결정 등 기업활동의
전반적사항들에 대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당 담당자들은 신발이 닳을 정도로 통산부(옛 상공부)를 자주
출입했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법률들이 공업발전법에 통합 운영됨으로써 규제는
대폭 완화됐다.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수입도 자유화돼있다.

근래에 와서 자동차 사업 신규참여나 고로식 방법에 의한 신규 철강공업
진입에 대해 약간 매끄럽지 못한 상황은 있었으나 대체로 기업자율을
보장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 산업에 있어서는 생산설비의 신.증설은 물론 신규참여
등의 문제는 민간발전심의위원회에 맡겨지고 있으며 실제로 기업자율에 의해
신.증설및 신규참여가 행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통상산업부로부터 허가받는다든가 승인받아야 할 일은 크게
줄었다.

필자의 경우도 회사일로 통산부를 찾아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혹 필요가 있어서 방문할 때라도 석유화학에 관한한 기초공업국만
들르면 끝이다.

국내 경제발전 수준에 맞춰 정부와 기업의 관계도 그만큼 변해왔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진 통산부 개편안은 이런
발전과는 역행하는 면이 적지 않다.

개편안에 따르면 한 기업이 사안에 따라 산업동향분석국에도 찾아가야
하고 산업요소국에도 찾아가야 한다.

게다가 노동 교육 환경 토지 금융 등 기능별로 재편성할 경우 노동부
환경부 건설교통부 등과 상당부분 업무가 중복돼 기업의 건의사항이
부처간의 알력을 조장하는 빌미로 작용될 우려도 있다.

통산부의 주요 고객은 분명 기업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일부의 예에서 보듯 조직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기업은
여러모로 불편해질게 뻔하다.

더욱이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온 체제를 탈피,서비스 중심체제로
전환한다는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기업에 불편을 주게될 요소가 많은 조직개편안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불합리하고 비생산적이다.

업계는 물론 일선 행정관청도 고객의 편의를 위해서 한번 들르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원 포인트(one point)서비스"체제로 바꾼지 오래인데
기업을 이끌어가야 할 정부가 거꾸로 "멀티(multi) 포인트 서비스"체제로
바꾸겠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의 주요 경쟁상대국인 일본 대만등 어느나라를 둘러봐도 업종별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것도 참고해야할 대목이다.

현재의 기업조직에서는 고객이 제일이라고 하는 이념하에 조직도 고객
위주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세계적인 종합화학회사인 듀폰사에 볼 일이있을 경우
한국지사에만 연락하면 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GM이 소재 관계로 듀폰의 협조가 필요하면
예전에는 소재별로 연락을 했으나 지금은 듀폰사의 GM담당자에게만
연락하면 해결해주도록 창구가 일원화돼있다.

앞으로 통상산업부에서 해야 할 일은 일본 통상산업성에서 하는 것과
같이민간기업 관계자와 각종 연구기관과 함께 꾸준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산업의 미래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비케 하는 역할이다.

물론 각 기업이 알아서 한다고는 하나 정부에서 방향을 어떻게
잡아주느냐에 따라 국가경제및 경쟁력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통상산업부의 역할은 국가 미래산업의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지도하고
각 분야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지원하여
산업발전을 이끌어가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정부가 추진 중인 통산부 조직개편안에 대한 재고가
있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