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내사업"을 꿈꾸지 않으랴.
자존심이 박살나도록 깨진 날이면 하루에도 몇번씩 사표를 쓴다.
상사의 코앞에 사표를 내던지는 장면을 그려보면서.
물론 당장은 아니다.
내일.
내일은 진짜 그만두리라.
하지만 막상 내일이 오면 슬며시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번달 월급은 받고...
간혹 중소기업이 휘청댄다는 뉴스가 들리면 되뇐다.
봉급쟁이가 역시 속은 편하고 말고.
하지만 제일제당 박재덕 과장(33)의 삶은 여느 직장인들과는 분명 다르다.
과장외에 또하나의 타이틀.
이벤트 전문회사 "베스트 컴"의 소사장.
"샐러리맨"의 안정감과 "사업가"의 성취감을 동시에 누리는 행복한
사나이이다.
제일제당의 사내기업인 베스트 컴은 지난 3월 탄생했다.
기업문화행사 스포츠이벤트 문화예술이벤트 전시 등 모든 이벤트가 커버
영역.
제일제당이 사업자금을 대긴 하지만 형식적인 결재외엔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
소사장의 매력은 사업실적에 따라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
물론 기본급여와는 별도다.
혹시 적자를 내더라도 불이익은 없다.
잘하면 상을 받고 못해도 탈이 없는 게 소사장의 특권.
지난 87년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박과장은 당시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했다.
원래는 제약사업부의 연구직을 지망했었다.
"박사 석사출신들이 쌔고 쌨더군요.
자칫하면 밤낮 비커나 닦으면서 젊은 시절을 보낼 것 같지 뭡니까"
막무가내로 다른 부서로 돌려달라고 졸랐다.
그리하여 발령받은 곳이 인사부.
3년동안 뛰어난 기획력으로 이름깨나 날리던 박과장은 영업부서를 거쳐
95년 홍보실 기획팀에 발탁된다.
소문난 기획력과 폭넓은 대인관계가 인정받았던 까닭이다.
홍보실로 옮겨온지 1년여.
박과장의 진로를 바꾼 결정적 계기가 찾아왔다.
회사가 영화사업을 시작하면서 스필버그 감독을 초청했는데 행사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
이때 박과장이 총대를 멨다.
"어차피 이벤트도 기획인데 저라고 못할 이유가 없어 보였지요"
뜻이 맞는 동료직원 4명과 3개월여 밤샘준비끝에 멋지게 행사를 해치웠다.
첫타석 안타였던 셈이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등 여러 굵직한 이벤트를 도맡으면서 차츰 대내외적인
명성을 쌓아나갔다.
이들의 최대 히트작은 지난해 5월 열린 제일제당의 기업 CI발표회.
이 행사는 업계 관계자들이 뽑은 "올해의 이벤트"로 당당히 선정됐다.
순수 아마추어로서 올린 개가였기에 더욱 값졌다.
이에 용기백배한 박과장과 팀원들은 마침내 프로등극을 결심하고 "독립
운동"을 벌인다.
그동안 이들의 활약을 지켜본 회사측이 쾌히 "윤허"를 내렸고 3월 드디어
정식 사내기업으로 출발하게 된 것.
박과장의 꿈은 국제 컨벤션 대회, 테마파크내 각종 이벤트 등 기존 이벤트
업체들이 손대지 못했던 부문의 전문업체로 키워내는 일이다.
믿는 구석도 든든하다.
그룹차원의 탄탄한 인프라가 받쳐주는데다 m.net 등 사내 관련사업 부문과
손잡으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디어와 끼로 뭉친 팀의 능력이 막강한 "빽"이다.
출발 첫해인 올해는 우선 초기 투자자본을 뽑는게 목표.
하지만 내년도 매출 30억원에 이어 내후년엔 50억~60억원은 훌쩍 넘어설
자신이 있다고.
"3년후엔 연봉 1억원짜리 소사장이 되어 있을 겁니다"
옹골찬 꿈을 키우는 박과장의 일기엔 그래서 "샐러리맨의 비애"란 없다.
< 글 김혜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