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산업부가 공정거래법 개정을 요구키로 한 것은 이 법 자체가 또다른
규제가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 자체는 산업정책의 목표와 지향하는 방향이 같지만
그 방법이 부적절해 오히려 산업경쟁력 향상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다.

즉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보하자는 취지가 살려면 기업의 투자나 상거래
등을 촉진시키는 쪽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논리다.

통산부는 공정거래법이 추구하는 방향엔 공감하지만 사전적 개입은 최소화
돼야 하며 모든 규제는 투명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통산부는 우선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를 지목했다.

경제력집중 억제조치가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다.

문어발식 기업확장을 막으려고 적용하고 있는 출자한도 제한의 경우 일본은
자기자본의 1백%까지 인정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순자산의 25%까지로
제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조차 힘들다는게 통산부의 분석이다.

또 친족경영 분리제도는 가급적이면 분리를 시켜 갈라놓자는 취지와는
달리 요건이 까다로워 분리를 막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총자산의 규모로 30개의 그룹을 잘라 따로 관리하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문제가 있으며 지극히 "한국적"인 이같은 제도는 개선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통산부는 각종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지만 예외를 인정하는 기업결합이나 공동행위등의
경우는 허용기준이 애매모호해 자의적으로 운용될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들어 부당공동행위 허용 기준의 경우 "공급능력이 현저하게 과잉상태
거나 생산능률이 현저하게 저하된 때"식의 추상적 문구로 기준이 정해져
있다.

국제경쟁력 향상이나 불황산업 구조조정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해석이 얼만든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예외인정의 경우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공정위의 "인정"을 따로 받도록
한 점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주장이다.

불공정행위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준을 정해 놓고서도 또다른 "승인"
을 요구하는 이중기준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통산부의 이번 지적은 일종의 성역으로 간주돼온 공정거래법에 정부부처가
첫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공정"을 추구한다는 명분 때문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으나 이제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과감히 폈다는 점이다.

경제검찰임을 자부해온 공정위로서는 응당 반론을 펴겠지만 차제에
공정거래법 자체에 불공정한 조항은 없는지를 원점에서 들여다 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게 경제계의 중론이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