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의 전경련회장단회의는 통화공급을 늘려 달라는 재계의 건의가 이 자리
에서 공식 제기되고 발표됐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된다.

사실 통화확대와 금리인하는 기회있을때마다 강조돼온 재계의 "고정 메뉴"
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민감한 사안인데다 정부 정책을 정면 반박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주로 전경련 사무국이나 한국경제연구원 등 이름으로 제기됐을뿐 회장단이
이를 공식석상에서 본격적으로 거론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이와 관련, 전경련 관계자는 "그만큼 현장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자금시장 경색의 정도가 심하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금흐름이 단기화되고 신용대출기능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데 대한
기업의 불안은 일반적인 인식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올 1.4분기 금융기관의 장.단기자금 대출 가운데 단기대출이 차지
하는 비중은 86.2%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포인트나 높아졌다.

특히 한보부도 사태 이후 신용대출을 특혜대출로 단정하는 시각 때문에
은행들이 담보요구를 강화하고 융자한도를 축소하는 등 보수적으로 여신을
운용하고 있어 각 기업의 자금담당 부서는 완전히 비상이 걸린 상태다.

특히 자금악화설이 도는 기업에 대해선 대출금을 조기회수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반면 이 와중에서 불안정한 금융거래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견질어음 담보관행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자금난에 빠진 진로그룹의 경우도 파이낸스사 등 일부 금융기관이
대출담보 수단으로 보유하고 있는 견질어음을 약정기일 도래전에 교환에
회부한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4.4분기 이후 상승세를 계속해온 어음부도율은 올들어 한보
삼미 등 기업의 잇단 대형 부도사태로 3월들어 0.24%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12.2%였던 콜금리가 4월30일 현재 14,16%로 급등 원인도 같은
맥락에서 찾을수 있다.

전경련은 이 기회에 통화공급확대 뿐 아니라 통화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장단 회의에선 "무역흑자 기조 때의 통화관리방식이 적자시대인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며 "정부가 통화직접관리 방식을 포기하고 간접관리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통화량 목표에 집착하는 후진적인 통화정책을 버리고 자금시장 전체를
고려하는 통화관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회장들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어쨌든 전경련 회장단이 공식적으로 통화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최근
일고 있는 통화공급 확대논쟁은 앞으로 확전양상으로 치달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