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일단 만들어진 말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규정한다.

따라서 말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상을 담고 있는 기호이다.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불황을 이름하여 "침체국면"이라고 하느냐 아니면
"조정 국면"이라고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게 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보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 중에서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말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형평"과 "함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함께 균등하게 나눠 갖는 결과의 평등,
이것이 형평이다.

그러나 이 말로부터 연유하는 사상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모두를
획일적인 공통의 틀에 묶어 넣는 위력을 발휘하여, 어느 분야에서나 "튀는
자"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나 세계적인 기업가가
나오기가 힘든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국민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모두가 튀는 자를 허용하지 않는 "형평"과 "함께"때문이다.

형평과 함께는 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다.

입사동기들은 똑같이 승진해야 형평에 맞고, 근무 연수가 같으면 누구나
똑같은 봉급을 받아야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고 형평에 맞는다.

튀는 자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구속이다.

"형평과 함께"라는 이름의 위장술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모든 대학의 화두가 된 대학개혁도 예외가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경쟁과 효율성 제고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위한 구조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학문발전을 위한 내부적인 경쟁장치는 위화감 조성이나 여건미성숙이라는
이유로 마련되지 못하고 잡다한 외형 키우기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구성원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고 어느 누구의 신상에도 불이익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혁하자는 것은 애당초 거짓말이다.

개혁이란 본디 자원의 재배치를 의미한다.

자원이 재배치되면 사라져 없어지는 학과나 단과대학도 생길 것이다.

학교를 떠나는 교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종합대학은 없어지게 마련이다.

혹자는 교수의 이동성이 전혀 없는 우리 대학의 현실 여건이 아직 경쟁을
수용할만한 단계가 아니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에 새겨진 "요즘 젊은 녀석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문구가
지금도 여전하듯이 여건은 언제나 성숙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기 마련이다.

경쟁만이 교수시장을 빠른 속도로 형성하고 발전시킬 것이다.

대학별 순위 뒤집기도 가능해질 것이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일등이 보장되어 있는 달리기 시합에서 있는 힘을 다
해서 달릴 사람은 없다.

시장경제에 대한 우려는 사실은 시장에서의 경쟁이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형평과 함께라는 분위기를 깨뜨릴 것이라는 불안에서 기인한다.

경쟁에서는 필히 뒤쳐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경쟁의 결과가 만들어 낸 풍요 덕분으로 얻어지는 뒤쳐진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모두 함께 감으로써 누리는 수준보다 높다면 더 이상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또 우리는 이를 경험하고 목격하지 않았는가.

출퇴근시의 자동차는 함께 가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서 "따로" 간다.

다만 각각의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들도 사고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신호를 잘 지킬 것이라는 것 등을 알 뿐,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 알지
못하며, 또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각자의 목적에 충실한 행동이 질서를 형성하고 협동으로 유도하며,
종국적으로 서로를 만나게 한다.

강요되지 않는 자유로운 선택이 모두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

이보다 더 나은 형평과 함께가 어디 또 있는가.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을 믿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익숙한 것은 편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시장경제론자들의 주장이
사람들의 가슴에 도달하는 데에는 원초적인 장애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원초적인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익숙한
것에 얽매였던 집단은 모두 멸망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했던 사회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충실했던
사람들과 튀는 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풍요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해하지 않고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였다.

반면에 형평과 함께를 강조했던 사회는 구성원 모두를 굶주림으로
인도했고 종국적으로 그 사회의 붕괴를 초래했다.

과거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사실의 보고이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더이상 배울 곳이 없다.

경쟁으로 인한 정당한 차이를 부정시하거나 경쟁회피를 미화하는 언어표현
들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이름들이 시장경제의 정당성을 부지불식간에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형평"과 "함께"보다는 "자유"와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경제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언어적 창구를
제시하는 일, 이것 또한 시장경제의 창달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