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와 관련, 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박석태 전제일은행
상무가 자살한채로 발견되자 박씨의 자살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정확한 자살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주변에서는
한보사태에 대한 도의적 책임감에다 청문회에서 증언파문, 개인적
우울증이 겹쳐 결국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특히 최근 만난 제일은행직원들에게 "더 이상 살맛이 없다"
라거나 "꿈에 자꾸 헛것이 보인다"는 말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져 지난
17일 청문회출석이후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려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추정되는 박씨의 직접적인 자살동기는 도의적 책임감.

박씨는 자살하기 직전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지영엄마 미안하오. 지영아 소영아 은행아 수영아 송주야 미안하다.

아빠는 약했지만 너희는 굳게 살아다오. 제일은행임직원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윤진식비서관님 박태영의원님 김원길의원님 죄송합니다.

여보 화장해주시오 (한강으로).

이철수행장님 신광식행장님 죄송합니다.

97년 4월 못난 아빠, 못난 남편, 불효자"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

주위에서는 이로 미뤄 자신이 은행부실이나 특혜대출의 실무주역인
것처럼 알려지자 수모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결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여기에 청문회 증언이 예상외로 파장을 일으킨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박씨는 청문회에 출석,한보에 대한 거액대출이 이뤄진 경위를 설명하면서
청와대 연루설과 행장의 지시사항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또 한보의 유원건설 인수 결정을 앞두고 이철수 당시행장의 지시로
청와대와 수시로 연락하고 윤진식비서관과는 한두차례 만나기까지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청문회후 그의 발언이 또다른 파장을 낳자 그의 우울증은 더욱 심화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박씨의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 주된
요인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평소 말이 없고 내성적이며 명예를 중시해온 박씨는 한보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것을 못견뎌했으며 그로 인해 신경쇠약이 심해졌다는 것.

청문회에 다녀온뒤에는 우울증이 더욱 심화돼 가까운 사람조차 만나는
것도 꺼려왔다고 한다.

아무튼 한보사태에 대한 청문회와 검찰수사가 마무리로 접어든 시점에서
발생한 박씨의 자살은 한보사태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