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한보특위의 구치소 청문회 이틀째인 8일 특위 소속 여야의원들은 전날
정태수씨에 대한 신문에서 "참패"를 당한 수모를 만회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했다.

야당의원들은 특히 정씨가 핵심쟁점에 대해 시종 함구로 일관, 청문회
1라운드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자 정씨를 재출두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등
전열정비에 나섰다.

<>.청문회 첫날 "자물통"으로 불리는 정씨의 입을 끝내 열지 못한 특위
위원들은 이날 청문회 시작 1시간전인 오전 9시부터 각당 별로 회의를 갖고
증인공략을 위한 묘수찾기에 부심하는 등 대책마련에 골몰.

특히 의원들은 한보 정회장의 입을 열지 못한 것이 자물통 입으로 알려진
정씨의 성격에도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특위 위원들이 정씨를
공략할수 있는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데 따른 것이라는 여론이 비등
하자 내심 당황하는 모습.

이에 따라 야당의원들은 청문회 직전 서울구치소 의원대기실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청문회가 끝나는 5월초께 정씨를 재차 출두시키는 방안을 긴급 동의키로
결정.

국민회의 간사인 이상수 의원은 "김본부장 등 한보 관련자들에 대한 증언이
끝나면 관련진술을 종합, 정씨를 상대로 재차 신문해 사실확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5월2일께 보충신문과정에 재출두하는 방안을 특위에 제출할
것"이라고 설명.

<>.신한국당 의원들도 청문회 직전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마련에 부심했으나
별다른 뽀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채 서둘러 회의를 종료.

김재천 의원은 회의 직후 "의원들간에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협의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고충을 토로한뒤 "일단 추이를 지켜봐야겠다"
며 사실상 속수무책임을 실토.

그러나 신한국당측은 "정씨가 입을 열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정씨를
재차 부르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회의적 반응을 표시하면서도 대질을 통한
신문방법에는 다소 호의적 반응.

<>.손홍균 전 서울은행장에 대한 오전 신문이 열린 이날 여야 의원들은
청문회 초반부터 특위위원 자격시비 논쟁을 재연해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에
의원들이 명분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

신한국당 의원들은 "김현철씨의 공천을 받은 재야출신 여당의원이 이 자리에
2명이 있다", "이사철 의원은 김씨가 매우 똑똑하다는 말을 해왔다"는
국민회의 김민석 의원의 가시돋친 전날 발언이 못내 분한듯 이날 이 문제를
재론.

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신한국당 이신범 의원은 "김의원이 전날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경우 특위 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면서 김의원의 사과를 요구.

이의원은 "김씨의 공천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김씨가 핵심증인
으로 있는 상태에서 진위여부를 떠나 연관의혹을 받는다면 내가 과연 특위
위원으로 활동할수 있겠느냐"며 사과를 받지않는 한 특위위원을 사퇴하겠다고
언명.

이사철 의원도 "김씨가 똑똑하다고 말한 것은 그를 치켜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똑똑하다는 말이 있으니 위원들이 청문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며 가치중립적인 발언임을 강조.

그러자 민주당 이규정 의원이 "별 것도 아닌 문제를 놓고 또다시 불필요한
소모전을 전개하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며 고성을 지르며 거세게 항의하는 등
한때 소란.

<>.이날 청문회는 정태수 총회장에 비해 증인의 비중이 떨어지는 때문인지
청문회장 분위기도 전날에 비해 긴장감이 줄어든 편.

정총회장 청문회때 출입구까지 사람들로 꽉찼던 것과는 달리 청문회장 뒷쪽
기자석과 의원석 뒷쪽 보좌관석에 빈 곳이 눈에 띄었으며 복도에도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등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특위위원 질문시간도 대폭 줄어 정총회장의 경우 장장 14시간여에 걸쳐
진행됐으나 이날은 손 전행장에 대해서는 2시간여, 김 전본부장은 8시간정도
배당.

특히 손 전행장에 대해서는 특위위원들이 "동정론"을 펴가며 한보철강에
대한 금융권 특혜대출의 실마리를 찾는데 주력해 눈길.

손 전행장이 여야의원들의 동정을 산 것은 그가 지난 94년 은행장 취임이후
한보관련 대출을 줄여나가고, 3백30억원의 여신을 회수하는 등 산업 조흥
외환은행 등이 밑바진 독에 물붇듯 한보에 여신을 쏟아부을때 정반대 방향
으로 갔다는 점 때문.

의원들은 따라서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특혜대출의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긴 이철수, 신광식 전 제일은행장, 우찬목 전 조흥은행장과는 달리 지난해
12월 국제밸브공업 등 4개 업체로부터 사례비를 받았다는 별건의 혐의로
구속된 손 전행장의 구속배경에는 "괴씸죄"가 작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까지.

이같은 동정론에도 불구, 특위가 손전행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한 이유는
그의 재임기간중인 지난 95년 5월 한보철강의 주거래 은행이 서울은행에서
제일은행으로 바뀐 배경에 대한 외압여부를 가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

의원들의 질의는 손전행장이 노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행장에 취임했고,
재임기간동안 여신감축및 회수에 노력을 기울이는 등 한보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결국 주거래은행이 바뀌게 된게 아니냐는데 집중.

< 허귀식.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