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마다 여신심사위원회를 만들고 있다.

행장이 독점하던 여신결정을 다수의 공론으로 전환시킨다는 취지다.

신한은행 등에서는 진작부터 실시해오던 것이 소위 메이저은행들인 5대
시중은행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보파문의 직격탄을 맞은 제일은행도 지난 1일 여신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첫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모두 10여개 기업에 대한 여신관리가 의제에 올라 일부
기업에 대해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회의 참석자들은 왜 진작 이런 회의체를 갖지 않았는지가 후회될 정도였다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밀실에서 결정되던 것이 광장으로 나왔으니 은행 관계자들 모두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제일은행의 경우 심사부에서 만든 자료부터 검증의 도마에 오르고 찬반양론
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는 것이니 일단 출발은 좋아 보인다.

그러나 만에 하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공론에 부쳐질 경우 객관적 자료와 숫자로 뒷받침된 자료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 벤처성 기업이나 창업자들이 설 땅이 좁아진다.

이들은 아무런 축적된 숫자를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또 숫자로 계량하기 힘든 경영자의 인적 요소들도 평가받기 어렵게 된다.

경영이 숫자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은 특히 불경기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영은 창조라는 말도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말일테다.

은행이 자료를 바탕으로 대출하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그리될 경우 만에 하나 위기의 기업들은 재기의 기회를 영구히 박탈당할
가능성도 있다는게 우려의 하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