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청담 이중환은 조선 후기의 대지리학자로서
실학 발전에 우뚝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1690년 (숙종16) 참판 진휴의 아들로 태어나 재종조부인 대실학자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실사구시의 학풍, 즉 실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4세때 문과에 급제한뒤 2세에 김천도찰방, 33세에 병조정랑이 되었다.

당시 극심했던 당쟁에 휘말려 여러차례 형을 받고 영조 3년인 38세에
유배를 당한뒤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30여년동안 일정한
거처도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의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전라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전역을 두루 답사하는 과정에서 얻은 실용적인
지식을 토대로 "택리지"라는 실학풍의 대표적 지리서를 만년 (65~66세)에
술했다.

"택지리"는 사민총론 팔도총론 북거총론 총론 등 네부분으로 엮어져
있으나 중점은 팔도총론과 복거총론에 있다.

팔도총론에는 각도의 역사 지리 지세 기후 산물 인물 취락 등을,
복거총론에는 지리 싱리 인심 산수 등을 기술해 놓았다.

특히 "택지리"는 두가지 면에서 다른 지리서와 구별되는 특징을 지녔다.

하나는 군현별로 쓰여진 백과사전식 지리서인 "동국예지승람" 등과는
달리 인물지리적 접근을 한 새로운 유형의 지리서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와 경제면에서 당시의 상황하에선 주목받을 견해를
피력했다는 점이다.

그의 견해는 사대부와 농공상의 구분을 단순한 직업상의 차이를 보고
지배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은 신분과, 인간의 생산활동과 상업적
농업을 중시하고 지리적환경조건에 적합한 수운과 교역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경제관에서 두드러진다.

이 경제관은 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파 학자들에게 계승되었다.

이중환은 대지리학자로서 손색이 없었으나 다만 풍수지리적인 면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의 업적이 제대로 재조명되는 한달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