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 존재 불과" 불만표출..월하스님 종정사퇴 배경/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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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항하던 조계종의 "송월주호"가 종정사퇴라는 격랑을 만나 크게 흔들리고
있다.
종단운영과 관련한 종정의 사퇴는 1962년 통합종단 출범이후 처음있는
일이어서 송월주 총무원장으로서는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더구나 "94년 이른바 개혁종단의 기치를 앞세우고 외견상 순탄한 길을
걸어오던 터라 충격파는 그만큼 크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쌓여온 월하 종정의 불만이 한꺼번에, 그리고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는 월주 스님에 대한 월하 종정의 불신임이라는 성격도 강하게 띠고 있다.
파장이 커지자 총무원의 요청에 의해 월하 스님이 13일 "총무원장에 하등의
불만이 있거나 어떤 사유가 있어 사표를 낸 것은 아니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내 진화에 나섰으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그동안 월하 스님은 이러저러한 일로 기회있을 때마다 월주 스님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스님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단적인 사례는 개혁종단이 출범한 이듬해를
빼고는 지금까지 한번도 신년하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월하 종정은 자신이 아끼는 K스님의 치탈도첩(승적박탈) 해제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월주 스님에게 수차례 부탁했으나 월주 스님은 종헌.종법 개정
의 어려움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사실상 거부함으로써 종정의 심기를 불편케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다 월하 종정이 예전의 성철 스님에 비해 종단운영에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풀이된다.
월하 스님은 "94년 5월 추대후 "종정은 종단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질서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성철스님과는 달리 종단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겠다는 뜻을 비쳤고, 이같은 의사는 이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다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월하 종정은 총무원장 중심의 현 체제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그동안 절감해온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종헌은 "종정은 조계종의 신성을 상징하고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지닌다"고 규정하면서 포상과사면 등의 일부 권한을 인정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종법이 없어 실질적으로는 이마저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월하 스님이 사퇴를 하면서 누가 종정이 되더라도 사면권, 본사주지임명권,
부동산처리 결재권 등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조계종 일각에서는 종정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종정예경실의
미비를 들기도 한다.
조계종의 "종정예경실 설치령"은 종정의 사무실에 해당하는 예경실을 총무원
내에 설치하고 예경실장과 약간명의 직원을 두며 운영비는 총무원 예산으로
충당한다고 돼 있으나 이같은 규정은 현재 지켜지지 않고 있다.
즉 종정이 총무원을 방문해도 마땅히 머물 곳이 없는 것이다.
참고로 서의현 전 총무원장 시절에는 성철 종정이 종무에 오불관언의 입장을
보였음에도 종정예경실은 설치돼 있었다.
문제는 사태 발생 후의 수습방안이다.
불교계가 아직까지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월주 스님의 대처자세
로,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그의 행보가 안이하게까지 비치고 있다고 일부
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월하 스님이 사퇴의 불가피성을 수차례에 걸쳐 표시해왔는데도
월주스님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막상 사표가 던져졌을 때도
뜻밖으로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사표제출 9일째인 18일 현재까지 월주 스님은 종정을 찾지 않고
있다.
종정이 사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할 기미가 있으면 총무원장은 당연히
만사제쳐두고 통도사로 달려가야 할 것이나 월주 스님은 그런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같은 월주 스님의 태도에 대해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사안이 워낙 커서 월하 스님의 진의를 충분히 파악한 다음 수습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며 그의 신중한 처신에 무게를 두는가 하면, 또다른
한편에서는 사태가 터지면 총무원장은 앞뒤 가릴 것 없이 종정 스님을 먼저
"찾아뵙고" 사태수습에 나섰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17일 예정된 월주 스님의 통도사 방문이 무산되자 통도사 측은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하 스님이 사표를 반려할 가능성은 일단 희박해 보인다.
17일 종단 원로와 중진스님들이 통도사를 찾아 반려를 간청하자 "다음 분이
(종정을) 했으면 좋겠다" "내 뜻은 이미 밝혔다"고 못박은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러나 총무원 측의 전망은 다르다.
17일 방문 당시 월하 스님이 종단업무보고를 받았을뿐 아니라 원로스님들이
종정스님의 사직서를 놓고온데 대해서도 "다시 가져가라"는 말이 없어
삼고초려를 하면 "끝내 마음을 돌이키실 것"이라며 애써 낙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9일자).
있다.
종단운영과 관련한 종정의 사퇴는 1962년 통합종단 출범이후 처음있는
일이어서 송월주 총무원장으로서는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더구나 "94년 이른바 개혁종단의 기치를 앞세우고 외견상 순탄한 길을
걸어오던 터라 충격파는 그만큼 크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쌓여온 월하 종정의 불만이 한꺼번에, 그리고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는 월주 스님에 대한 월하 종정의 불신임이라는 성격도 강하게 띠고 있다.
파장이 커지자 총무원의 요청에 의해 월하 스님이 13일 "총무원장에 하등의
불만이 있거나 어떤 사유가 있어 사표를 낸 것은 아니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내 진화에 나섰으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그동안 월하 스님은 이러저러한 일로 기회있을 때마다 월주 스님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스님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단적인 사례는 개혁종단이 출범한 이듬해를
빼고는 지금까지 한번도 신년하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월하 종정은 자신이 아끼는 K스님의 치탈도첩(승적박탈) 해제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월주 스님에게 수차례 부탁했으나 월주 스님은 종헌.종법 개정
의 어려움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사실상 거부함으로써 종정의 심기를 불편케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다 월하 종정이 예전의 성철 스님에 비해 종단운영에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풀이된다.
월하 스님은 "94년 5월 추대후 "종정은 종단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질서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성철스님과는 달리 종단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겠다는 뜻을 비쳤고, 이같은 의사는 이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다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월하 종정은 총무원장 중심의 현 체제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그동안 절감해온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종헌은 "종정은 조계종의 신성을 상징하고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지닌다"고 규정하면서 포상과사면 등의 일부 권한을 인정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종법이 없어 실질적으로는 이마저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월하 스님이 사퇴를 하면서 누가 종정이 되더라도 사면권, 본사주지임명권,
부동산처리 결재권 등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조계종 일각에서는 종정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종정예경실의
미비를 들기도 한다.
조계종의 "종정예경실 설치령"은 종정의 사무실에 해당하는 예경실을 총무원
내에 설치하고 예경실장과 약간명의 직원을 두며 운영비는 총무원 예산으로
충당한다고 돼 있으나 이같은 규정은 현재 지켜지지 않고 있다.
즉 종정이 총무원을 방문해도 마땅히 머물 곳이 없는 것이다.
참고로 서의현 전 총무원장 시절에는 성철 종정이 종무에 오불관언의 입장을
보였음에도 종정예경실은 설치돼 있었다.
문제는 사태 발생 후의 수습방안이다.
불교계가 아직까지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월주 스님의 대처자세
로,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그의 행보가 안이하게까지 비치고 있다고 일부
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월하 스님이 사퇴의 불가피성을 수차례에 걸쳐 표시해왔는데도
월주스님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막상 사표가 던져졌을 때도
뜻밖으로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사표제출 9일째인 18일 현재까지 월주 스님은 종정을 찾지 않고
있다.
종정이 사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할 기미가 있으면 총무원장은 당연히
만사제쳐두고 통도사로 달려가야 할 것이나 월주 스님은 그런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같은 월주 스님의 태도에 대해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사안이 워낙 커서 월하 스님의 진의를 충분히 파악한 다음 수습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며 그의 신중한 처신에 무게를 두는가 하면, 또다른
한편에서는 사태가 터지면 총무원장은 앞뒤 가릴 것 없이 종정 스님을 먼저
"찾아뵙고" 사태수습에 나섰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17일 예정된 월주 스님의 통도사 방문이 무산되자 통도사 측은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하 스님이 사표를 반려할 가능성은 일단 희박해 보인다.
17일 종단 원로와 중진스님들이 통도사를 찾아 반려를 간청하자 "다음 분이
(종정을) 했으면 좋겠다" "내 뜻은 이미 밝혔다"고 못박은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러나 총무원 측의 전망은 다르다.
17일 방문 당시 월하 스님이 종단업무보고를 받았을뿐 아니라 원로스님들이
종정스님의 사직서를 놓고온데 대해서도 "다시 가져가라"는 말이 없어
삼고초려를 하면 "끝내 마음을 돌이키실 것"이라며 애써 낙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