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가장 완숙한 형태의
조선백자 항아리.

순백의 풍만한 몸체가 둥근 달을 닮아 "달항아리"라고 불린다.

가장 완숙한 형태미를 자랑하는 달항아리가 제작된 이유를 알려면
먼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17세기 초반 오랑캐라 불리던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우자 조선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오랑캐가 세운 나라를 종주국으로 받들 수 없던 당시 사대부들은
이때부터 외부를 바라보지 않고 내부에 관심을 돌려 우리것에 대해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실학과 진경산수, 춘향전 흥부가같은 주체적 관점의 사상과 문학
예술사조들도 모두 이때 형성된 것으로 우리것에 대한 관심의 결과물들이다.

도자부문에 있어서도 청나라는 청화백자위에 에나멜로 삼채 오채
칠채를 하여 화려한 채색도기를 만들었다.

일본의 경우 청의 기법을 그대로 배워 중국과 똑같은 자기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한다.

그러나 조선은 오랑캐짓이라 하여 이를 답습하지 않고 단순.간결한
형태의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순백의 풍만한 달항아리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이후 백자가 전국각지에서 활발하게 제작되면서 둥근 달항아리의
제작기법도 다양해져 철화기법의 운룡문 매죽문 초화문등이 자유롭게
시문된 항아리들이 많이 생산됐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