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표류하는 국가모델 .. 송병락 <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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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으로부터 한국이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난해 스웨덴에 갔을 때 그곳 경제학자 한 사람이 필자에게 했던 말이다.
70년대 중반까지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였던 스웨덴은 현재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대로 몇년만 가면 파라과이 내지 우루과이 같은 신세로
추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스웨덴은 현재 체제모델 바꾸기에 한창이다.
최근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면서 현 체제로는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
스웨덴이 이렇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어느 정도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스웨덴 기업은 겨우 30여개.
그나마 20세기 들어 하나도 늘어나지 않았다.
기업이 생기지 않는데 국가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스웨덴 뿐만 아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가운데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지난 74~94년간 새로운 일자리를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부가 고용창출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MIT대 레스터 서로 교수는 "경제학이 죽었다"고 애기하고 있다.
유럽의 이같은 쇠퇴는 국가모델이 잘 못 돼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이들 나라가 택한 복지주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얘기다.
공산주의의 4촌뻘 되는 복지주의는 공산국가와 맞닿아 잇는 유럽국가들이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를 강화하면서 택한 체제다.
바로 이 복지주의가 유럽을 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게리 베커교수(시카고대)는 "서구 선진국은
사회 복지 때문에 실패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사회복지 보다는 가족복지에
더 많은 관심과 정책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은 어떤가.
오히려 청와대에 사회복지수석비서관직을 신설해 사회복지를 강화해온
것 아닌가.
유럽선진국이 버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새로 만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국가모델이 최근들어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동법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 국가 모델을 분명했으면 이렇게 많은 논란이 제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모델인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는 고용과 해고는 당연히 기업의
자유여야 한다.
정리해고등은 논란의 여지도 없이 당연히 필요한 제도인 것이다.
이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체제와 맞지 않는 것이다.
복지주의의 유럽의 경우는 기업이 한 번 직원을 고용하면 좀체로
해고하기가 어렵게 돼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기업은 문을 닫고 기업가는 해외로 나가고 있다.
무한경쟁시대에 왜 우리가 하필 유럽식으로 가야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노동조합이 늘어나고 강성화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미 몰락의 나쁜 전철을 우리가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
남미경제전문가들은 남미의 몰락을 도시의 강성노조, 시골의 강성지주,
인기 영합형 정치가, 국가전략을 오도한 사이비학자의 공동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강성노조다.
세계적으로 강성노조가 줄어들고 노동운동 자체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노조가 합법화되는 등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노동운동가가 대통령이 됐던 폴란드와 같은 길을 가자는 말인가.
국가모델이 표류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너무나 많다.
생산성과 연관이 없는 연공서열형 임금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딸을 공기업에 취직시킨 한 친구는 "초임연봉이 2천만원이
넘더라"며 "이렇게 많이 주고도 회사가 운영되는가"고 물어왔다.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은 결국 시장경제체제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은 증거에 다름 아니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두배 세배의 임금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절반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의 룰(rule)인
것이다.
인재가 경제분야에는 잘 몰리지 않는 것도 문제다.
수능시험 전국 상위 37명이 모두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는게 현실이다.
"경제전쟁"시대에 인재들이 법대로만 몰리는 것은 분명 잘못된 현상이다.
국가모델이 표류하고 있으니 아직까지 "과거지망생"들이 많은 것이다.
이분야에도 분명 인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재들이 기업에 몰려가야 우리 체제에 걸맞는 것이다.
특히 여전히 "정치 산업"의 수익성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다.
수십년간 따라 다닌 가신을 위해 뒤를 봐주다 보면 정치는 더욱 활성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자연 경제는 정치의 하위개념이 되고 만다.
기업지망생이 적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정치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국가모델의 표류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문민정부 들어 많은 개혁이 있었다.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노동법개정..그러나 그 성과는 의욕 이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에선 "선무당들이 너무 일만 크게 벌여놨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몇년내에 모든 것을 끝내려는 과욕이 일을 망친것은 물론이요 국가모델의
흔들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 것이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우리는 확고한 국가모델을 정착시키는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이다.
그런 작업이 있은 후라야 기업가 정신을 자라나고 근로의욕을 생겨나고
그를 통해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6일자).
지난해 스웨덴에 갔을 때 그곳 경제학자 한 사람이 필자에게 했던 말이다.
70년대 중반까지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였던 스웨덴은 현재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대로 몇년만 가면 파라과이 내지 우루과이 같은 신세로
추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스웨덴은 현재 체제모델 바꾸기에 한창이다.
최근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면서 현 체제로는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
스웨덴이 이렇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어느 정도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스웨덴 기업은 겨우 30여개.
그나마 20세기 들어 하나도 늘어나지 않았다.
기업이 생기지 않는데 국가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스웨덴 뿐만 아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가운데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지난 74~94년간 새로운 일자리를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부가 고용창출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MIT대 레스터 서로 교수는 "경제학이 죽었다"고 애기하고 있다.
유럽의 이같은 쇠퇴는 국가모델이 잘 못 돼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이들 나라가 택한 복지주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얘기다.
공산주의의 4촌뻘 되는 복지주의는 공산국가와 맞닿아 잇는 유럽국가들이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를 강화하면서 택한 체제다.
바로 이 복지주의가 유럽을 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게리 베커교수(시카고대)는 "서구 선진국은
사회 복지 때문에 실패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사회복지 보다는 가족복지에
더 많은 관심과 정책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은 어떤가.
오히려 청와대에 사회복지수석비서관직을 신설해 사회복지를 강화해온
것 아닌가.
유럽선진국이 버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새로 만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국가모델이 최근들어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동법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 국가 모델을 분명했으면 이렇게 많은 논란이 제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모델인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는 고용과 해고는 당연히 기업의
자유여야 한다.
정리해고등은 논란의 여지도 없이 당연히 필요한 제도인 것이다.
이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체제와 맞지 않는 것이다.
복지주의의 유럽의 경우는 기업이 한 번 직원을 고용하면 좀체로
해고하기가 어렵게 돼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기업은 문을 닫고 기업가는 해외로 나가고 있다.
무한경쟁시대에 왜 우리가 하필 유럽식으로 가야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노동조합이 늘어나고 강성화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미 몰락의 나쁜 전철을 우리가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
남미경제전문가들은 남미의 몰락을 도시의 강성노조, 시골의 강성지주,
인기 영합형 정치가, 국가전략을 오도한 사이비학자의 공동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강성노조다.
세계적으로 강성노조가 줄어들고 노동운동 자체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노조가 합법화되는 등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노동운동가가 대통령이 됐던 폴란드와 같은 길을 가자는 말인가.
국가모델이 표류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너무나 많다.
생산성과 연관이 없는 연공서열형 임금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딸을 공기업에 취직시킨 한 친구는 "초임연봉이 2천만원이
넘더라"며 "이렇게 많이 주고도 회사가 운영되는가"고 물어왔다.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은 결국 시장경제체제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은 증거에 다름 아니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두배 세배의 임금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절반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의 룰(rule)인
것이다.
인재가 경제분야에는 잘 몰리지 않는 것도 문제다.
수능시험 전국 상위 37명이 모두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는게 현실이다.
"경제전쟁"시대에 인재들이 법대로만 몰리는 것은 분명 잘못된 현상이다.
국가모델이 표류하고 있으니 아직까지 "과거지망생"들이 많은 것이다.
이분야에도 분명 인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재들이 기업에 몰려가야 우리 체제에 걸맞는 것이다.
특히 여전히 "정치 산업"의 수익성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다.
수십년간 따라 다닌 가신을 위해 뒤를 봐주다 보면 정치는 더욱 활성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자연 경제는 정치의 하위개념이 되고 만다.
기업지망생이 적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정치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국가모델의 표류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문민정부 들어 많은 개혁이 있었다.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노동법개정..그러나 그 성과는 의욕 이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에선 "선무당들이 너무 일만 크게 벌여놨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몇년내에 모든 것을 끝내려는 과욕이 일을 망친것은 물론이요 국가모델의
흔들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 것이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우리는 확고한 국가모델을 정착시키는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이다.
그런 작업이 있은 후라야 기업가 정신을 자라나고 근로의욕을 생겨나고
그를 통해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