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 '고건'] 행정능력 뛰어난 '실무형 총리'..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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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고건총리는 관계 정계 학계를 두루 거친 "실무형 행정총리"로 꼽힌다.
특히 "행정의 달인"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탁월한 행정능력과 원만한
대인관계가 강점이라는게 공통된 평이다.
내무관료 출신인 고총리는 3공시절 전남지사, 최규하 대통령 재직시
청와대 정무수석, 5공시절 교통.농수산.내무장관, 6공에서는 서울시장을
지내는 등 역대정권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85년 12대 총선에서는 민정당 공천으로 전북 옥구에 출마, 당선돼
도지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고총리는 호남의 손꼽히는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일류학교를 다니며
순탄하게 성장했으며 관운좋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중.고를 나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뒤 지난 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 다음해에 내무관료로 관계에 진출한뒤 75년 37세의 나이로
전남지사에 임명돼 최연소 도백의 기록을 세웠다.
6공시절인 지난 88년 4.26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재출마했다가
"황색돌풍"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곧바로 서울시장에 복귀했다.
고총리는 6척장신의 거구이지만 온화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을 편하게
다루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업무추진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고총리는 지난 38년 서울 창전동에서 출생했다.
그가 옥구 출신으로 알려진 것은 부친 고형곤 전전북대총장을 비롯한
그의 조상이 대대로 이곳에 뿌리를 내려왔기 때문이다.
부친은 6대국회에 야당이었던 민정당후보로 군산.옥구에서 출마, 당선된
적이 있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고총리는 관계에 입문할 때 부친으로부터 <>남의 돈을 받지 말라
<>누구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말라 <>술 잘 마신다는 소문이 나지 않게
하라는 세가지 교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오랜 관료생활을 하는 동안 출세가도를 달려온 비결은 부친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는 노태우 전대통령 아래서 서울시장으로 일할 당시 정태수씨의
한보그룹에 대해 수서아파트 건축허가를 내주라는 외압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다가 경질되기도 했다.
다만 "밑빠진 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주불사형"이라 부친의 "절주훈계"
만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고총리는 토.일요일엔 테니스장에서 찾아보는 것이 빠르다는 얘기가
나올만큼 테니스광으로 알려져 있다.
또 호텔 사우나를 마다하고 꼭 동네 목욕탕을 찾는 서민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화력한 경력 만큼이나 정치적 변신이 잦았다는게 흠으로 꼽힌다.
부인 조현숙씨(59)와 3남을 두고 있다.
< 이건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5일자).
특히 "행정의 달인"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탁월한 행정능력과 원만한
대인관계가 강점이라는게 공통된 평이다.
내무관료 출신인 고총리는 3공시절 전남지사, 최규하 대통령 재직시
청와대 정무수석, 5공시절 교통.농수산.내무장관, 6공에서는 서울시장을
지내는 등 역대정권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85년 12대 총선에서는 민정당 공천으로 전북 옥구에 출마, 당선돼
도지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고총리는 호남의 손꼽히는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일류학교를 다니며
순탄하게 성장했으며 관운좋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중.고를 나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뒤 지난 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 다음해에 내무관료로 관계에 진출한뒤 75년 37세의 나이로
전남지사에 임명돼 최연소 도백의 기록을 세웠다.
6공시절인 지난 88년 4.26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재출마했다가
"황색돌풍"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곧바로 서울시장에 복귀했다.
고총리는 6척장신의 거구이지만 온화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을 편하게
다루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업무추진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고총리는 지난 38년 서울 창전동에서 출생했다.
그가 옥구 출신으로 알려진 것은 부친 고형곤 전전북대총장을 비롯한
그의 조상이 대대로 이곳에 뿌리를 내려왔기 때문이다.
부친은 6대국회에 야당이었던 민정당후보로 군산.옥구에서 출마, 당선된
적이 있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고총리는 관계에 입문할 때 부친으로부터 <>남의 돈을 받지 말라
<>누구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말라 <>술 잘 마신다는 소문이 나지 않게
하라는 세가지 교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오랜 관료생활을 하는 동안 출세가도를 달려온 비결은 부친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는 노태우 전대통령 아래서 서울시장으로 일할 당시 정태수씨의
한보그룹에 대해 수서아파트 건축허가를 내주라는 외압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다가 경질되기도 했다.
다만 "밑빠진 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주불사형"이라 부친의 "절주훈계"
만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고총리는 토.일요일엔 테니스장에서 찾아보는 것이 빠르다는 얘기가
나올만큼 테니스광으로 알려져 있다.
또 호텔 사우나를 마다하고 꼭 동네 목욕탕을 찾는 서민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화력한 경력 만큼이나 정치적 변신이 잦았다는게 흠으로 꼽힌다.
부인 조현숙씨(59)와 3남을 두고 있다.
< 이건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