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장기간의 고성장 시대를 지나 최근에 와서는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대폭적인 국제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등 구조적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학장 팔프 다렌돌프가 말한 소위 "눈물의 계곡"에
빠지지나 않는지 두려움이 앞선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의 노동법사태, 한보사태 등의 인재로 인해 그 어려움은
더해 가고 있다.

특히 한보철강의 부도 사태로 국민경제의 뿌리가 흔들리고 그 여파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하청 중소기업이 부지기수다.

이번에도 정부는 중소기업에 긴급자금지원을 약속하는 등 단시일에 한보
사태의 영향을 극소화하는데 노력한다고 하지만 그 효과가 바라는 데로
현실화될지는 의문이다.

사태가 이렇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정책 대응능력에 회의를 느끼는 어론이
비등하다.

국가경제의 관리는 저절로 되는 것처럼 당연시했으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예를 들어 마르코스의 실정에 의해 필리핀 경제가 영원히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예와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도달했다가 다시 후진국 상태로 몰락한
아르헨티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후 외환위기에 처한 멕시코 등의
교훈에서 전환기의 경제관리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현정부가 출범한 이래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실시했지만 정부의 의사결정
및 집행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쳤거나 방향성을 잃어 정부의 경제관리에
한계점을 보여 준 예는 하나 둘이 아니다.

첫째 정부의 오도된 경제관리로 인해 경제의 기회비용을 증대시킨
대표적인 예는 바로 천문학적 금액의 특혜대출을 일으킨 한보사태이다.

한보에 지원한 5조원을 경쟁력있는 중소기업이나 산업분야에 지원하였다면
한국 경제전체의 경쟁력은 얼마나 향상되었겠는가.

둘째 금융실명제 및 토지실명화는 지하경제를 제거하는 데 효과는
있었지만 반면에 그 결과로 잉여자금들이 사장되거나 생산자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특수그룹들의 현시적 사치적 소비문화에 이바지하는 등 자금흐름의
왜곡을 초래했다.

과거 박정희정권 때는 기업이 부당히 조성된 자금을 국책사업에 투자하지
않는 경우 제재를 가하여 이들을 국가사업에 참여하도록 강제하였다.

문민정부가 통제정책을 쓸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국가사업에 투자를
유도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정부는 이를 생산적 자금으로 유도하는 정책
개발에 실패했다.

셋째 정부는 선진국 시장 개방 압력과 통상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즉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통상압력이 심해짐에 따라 대체시장으로 구소련
중국 동남아시아 등 개도국의 시장진출에 적절한 정책적 대응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지화와 조직적 시장개척을 위한 정책개발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의 기업들은 시장에 대한 사전 연구와 탐사를 유능한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통해 면밀히 실시한 후 투자를 결정한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시장에 대한 조직적 사전 조사는 등한시하고 단순한
인맥이나 상대방 정부채널에 의존하여 사업을 벌림으로써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부족하고 위기관리에 있어 사후점검에도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령 섬유 신발 등의 사양사업의 경우 일본은 한국시장을 공략함으로써
충분한 대가를 얻고 자국의 사양산업을 정리하였으나 우리의 경우는 기업
도산을 통해 대량폐기식으로 자동정리하였다.

즉 일본은 해당 사양산업에서 축적한 자본과 기술을 제3국을 통해
이전시키는 가운데 경제적 과실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보였으나 우리의
경우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넷째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중소기업정책의 실패는 1.정부주도에 의한 대기업위주의 성장전략 2.중소
기업에 대한 기술.설비 투자 미비로 인한 적극적 구조조정의 실패 3.임금
상승으로 인한 국제 경쟁력 상실 4.수입자유화와 대외 시장 여건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21세기 선진 산업국을 지향하는 한국 경제는 그동안의 경제성장을 위해
희생되었던 많은 부분을 발전시켜야 하고 향후 중소기업을 한국경제 활력의
원천으로 성장시켜야 할 숙명을 안고 있다.

세계 경제 환경과 지방화시대의 국내 정치환경에 맞는 중소기업의 모습이
21세기를 풀어내는 열쇠이다.

다섯째 세계화를 정책 슬로건으로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화 전략의
추진에 적합한 인적자원의 개발에 소홀했다.

예를 들어 과거 정부에서 실시했던 영농후계자 양성 프로그램과 같이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중소기업경영후계자에 대한 양성대책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언어해독능력과 개척정신을 겸비한 기업가 특히 젊은 기업가를 양성하는
인적자본 투자는 진정한 세계화의 기초가 된다.

국내산업이 사양화되는 과정 속에서 젊은이들이 기회를 찾아 해외로
탈출해 갔던 선진 산업국가의 역사적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소위 교육
수준이 높고 능력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국내에 머물러 안주할 것이 아니라
국외로 나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양성될 수 있게 하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

끝으로 기업의 효율화와 사회적 효율화를 어떻게 적절히 조화시키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노동법상의 중요 이슈가 되어있는 정리해고제에 있어
선진국형 해고방식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여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노동시장에 있어 직업이동이 자유롭게 재고용 기회가 많고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확충되어 있는 선진국에서의 해고와 동일한 개념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을 유연화시키거나 효율화시킨다면 대량 실업의 발생, 사회적
불안의 점중, 노사관계의 악화 등 경제전체적으로 볼 때는 사회적 비용이
증대할 수 밖에 없다.

즉 기업의 효율화와 사회의 효율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문제는 정부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