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북한노동당 비서의 한국망명신청은 북한권력층내 내분이 상당수준
진행돼왔고 어쩌면 사실상 마무리단계에 진입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전문가들은 황비서 망명이 올해안으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공식승계를
앞두고 혁명1세대와 2세대, 개혁파와 보수파, 군부와 비군부세력간 권력
투쟁에서 혁명1세대 개혁파 비군부세력이 밀린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권력의 핵심인사이며 북한체제 유지의 골간인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최고의 이론가로 김정일의 가정교사를 지내는 등 후계자 이미지를 창출,
관리해온 장본인인 황비서가 권력재편과정에서 패배하는 등 상당한 위기
상황에 봉착하지 않고서는 북한을 등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안기부장특보와 남북고위급회담대표를 역임했던 자민련 이동복의원은
이와관련, "황비서가 김정일을 통한 개혁을 더이상 기대할 수 없었거나
김정일조차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특히 "황이 재작년(95년) 북한을 방문한 미기업인들을 공항까지
환송하면서 남한에 있는 평양상업학교 2년후배인 김재순 전국회의장에게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금년말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여 주목해왔다"고 밝혔다.

이같은 황의 동정은 그를 포함한 개혁세력이 최소한 2년전부터 변화를
도모해왔거나 이미 그때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음을 추측케 하는 것이다.

통일원에 따르면 지난해 황은 50여회에 걸쳐 이뤄진 김정일의 대외활동
중에서 2~3차례만 수행하는 등 권력핵심부에서 소외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따라서 예전과는 달리 미국 일본 등 대외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목소리가
군부강경파들에 밀려 북한체제내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절감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과거 권력핵심층들에 대한 고의적인 배제 및 소외가 비단
황 개인에 한해서 이뤄지는 것인지 아니면 혁명1세대와 개방파들에게
집단적으로 이뤄진 것인지는 그의 추가적인 설명이 따라야 분명해질 듯하다.

그러나 혁명1세대와 개방파 비군부세력의 후퇴는 예전까지 북한의
통상적인 권력서열이 정치국위원 정치국후보위원 당비서 군부실력자 정무원
부총리 순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군부실력자들이 당비서들에 앞서서
호명되고 있는 예로 어느정도 엿볼 수 있다.

북한이 <>남북쌀회담과정에서 중앙의 명령이 지방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혼선을 노출시키고 <>미국과 연락사무소 조기개설에 합의해놓고도 판문점을
통한 외교행랑 운반을 기피하고 <>나진.선봉투자포럼에 우리정부관계자들의
참석을 불허하고 <>비슷한 시기에 잠수함침투사건을 일으킨 점 등은
군우위의 비정상적 모습으로 거론된다.

결국 이번 황의 망명은 아직 불분명한 구석이 많긴 하나 김일성사후의
권력재편과 당면한 위기상황의 타개책을 둘러싼 권력핵심부의 암투와
무관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군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음을 대외적으로
확인시켜준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허귀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