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얼마를 받고 팔아야 하느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소형
약국과 대형 약국간의 싸움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대한약사회는 표준소매가보다 싼 값에 약을 판매하고 있는 일부 대형
약국에 대해 무자료거래행위 등을 추적해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대형 약국이 주축인 약국경영자협회 등은 약사회에 공개
토론회를 제안하는 등 일전불사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서로를 교묘한 논리로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있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비난하는 등 감정싸움으로 까지 번지고 있다.

약국경영자협회 등의 논리는 "약을 싸게 파는 게 왜 죄가 되느냐"는 것.

도데체 덤핑이 아닌 이상 싸게 파는게 행정처분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제조업체가 신고한 공장도가격과 실제 공장도가격의 차이를 사실상 인정
하고 있는 현행 제도 때문에 소비자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모제약에서 제조하는 청심환의 경우 실제 공장도가격은 1천5백
원이나 신고된 값은 3천6백40원이라는 것.

여기에 유통마진 30%를 보장한 표준소매가격은 5천2백원에 달해 소비자
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실제 공장도가격을 근거로 2천원에 약을 팔아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자신들의 행위가 왜 법을 어기는 것이되냐고 항변하고 있다.

이들은 아예 약값을 자율화함으로써 경쟁의 원리를 도입하자고까지 요구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소형 약국들은 대형약국의 할인판매가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미끼"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명 드링크나 파스 등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제품들의 값을 공장도 가격
이하로 파는 대신 다른 약값은 턱없이 올려받는 다는 것.

다시말해 유명한 제품은 파격적인 값으로 싸게 팔지만 다른 제품은 비싸게
받아 결국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부 대형약국은 현금결제 등을 내세워 제조업체에 일명 오더 메이드
(order made)라고 불리는 특수제조약을 받아 팔면서 큰 이익을 남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보건복지부도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놓았다.

"표준소매가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되 거품이 들어있는 약값은 과감히
내리겠다"(손학규 복지부장관)는 것.

이를 위해 1백50여개의 품목에 대해 이미 가격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형 약국의 약값 자율화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소비자들이 약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공급자들의 "장난"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약을 공산품과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번 약값분쟁으로 소비자들의 불신이 깊어졌다는데
있다.

약값분쟁이 격화된 뒤 "그렇다면 그동안 약국들은 얼마나 이익을 챙겼다는
얘기고 당국은 도데체 뭘하고 있었느냐"(자양동 전명우씨.36)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또 "몸이 아파 약을 살 수 밖에 없지만 이때마다 속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일산 김현철씨.30).

결국 이번 약값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믿고 살 수 있는 약국을 잃어버린
소비자들인 것 같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