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제가 중환자라니요?"

"편두통이 왜 안 낫는지 알아요?"

"몰라요"

지영웅은 득의의 미소를 감춘다.

그러나 예민한 공박사는 갑자기 화를 벌컥 낸다.

뭔가 지영웅이 숨기는 것 같아서다.

그녀의 처방약은 웬만한 편두통에는 아주 잘 듣는 약이었다.

이 친구가 혹시 의도적으로 병원에 올 구실을 마련하느라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추리는 맞았다.

그러나 한술 더 뜨는 것은 지영웅이었다.

둘의 센스는 막상막하다.

기본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박사님, 제가 왜 비싼 돈을 버리고 박사님에게 자꾸 오겠습니까?

이 지저분한 황태자가 얼마나 시간이 없는지 아시잖습니까? 그렇게
째려보지 마세유. 박사님, 한번만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왜 저의 어디가 정신병원에 가야할 정도라 그 말씀입니까?"

지영웅의 연극은 훌륭했다.

그는 지금 공인수박사와의 게임에서 결사적이다.

오히려 무방비 상태인 것은 공박사 쪽이다.

적어도 그녀는 지영웅의 공격목표가 자기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으니까.

잠깐 눈을 감고 격한 감정을 정리한 공박사는 다시 침착하게 면담을
진행한다.

"지영웅씨가 고아가 된 것은 15세라고 했지요?"

"네"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아주 측은한 모습을 연출하며 공박사를
바라본다.

그 모습은 흡사 공박사가 집에서 기르고 있는 애견 루비의 슬픈 눈동자를
닮았다.

어떤 때 루비는 과자를 던져 주려다가 "요놈 살쪄서 안돼"하고 호령을
하면 슬픈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오들오들
떤다.

그러한 스피츠의 모습은 공박사의 동정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더 많은
과자와 고기토막을 그녀에게서 얻어 먹는다.

그 하얀 미녀 귀족 루비의 눈빛을 지영웅은 닮았다.

처음 볼때 부터 지영웅의 눈동자 모습은 애견 루비를 많이 닮아서, 특히
그녀의 동정심을 많이 받았었는지도 모른다.

지영웅의 눈동자는 언제나 선량하고 아주 슬퍼 보인다.

그것이 지영웅에게 많은 중년 여인들이 돈을 듬뿍 듬뿍 쓰게 하는
마력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지요?"

"아, 네. 저는 늘 박사님과의 약속도 잘 못지키고..."

그는 거의 울먹인다.

그러다가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왕 하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운다.

떼를 쓰고 발버둥을 치며 우는 것이 아니라 서러워서 우는 괴로운
울음이다.

가슴이 탁탁 터져오르는 아주 서러운 울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