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세계금융시장 중심지중의 중심지인 런던 증권거래소 국제부장과
만나 최근 우리의 최대현안으로 대두된 "빅뱅"이라고 알려진 영국의
금융개혁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런던거래소가 자체기구의 과감한 축소와 업무의 민간이양,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인력감축을 통해 경영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없었다면 현재의
세계적 지위를 구축할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과 아울러 빅 뱅의 성공도
보장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빅뱅을 추진했던 80년대중반 당시 런던거래소에는 약 3천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했으나 현재는 8백명을 조금 넘는 직원으로도
그 당시보다 훨씬 늘어난 상장사와 거래량을 충분히 소화해낼 뿐만
아니라 도쿄 거래소에 내주었던 세계2위의 자리도 되찾았다는 것이다.

런던거래소가 이러한 과감한 발상과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당국이 모든 규제와 사후관리를 직접 수행하지 않아도 될수 있다고
하는 환경변화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내 밥그릇은 내가 꼭 챙겨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고의 틀을 과감히 탈피할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귀감이 되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제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조직과 효율이 떨어지는
인력은 과감히 정리할수 있는 풍토와 그것을 받아들일수 있는 조직문화와
제도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듯 제 밥그릇 챙기기와 연공서열, 평생직장 등의
제도와 풍토가 있었다면 아마 최루탄 꽤나 터졌을 터이다.

작은 조직을 경영하든 또 큰 조직의 최고경영자이든 "인사는 만사"라고
하는 조직경영의 제일조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릇 작은 변화든 개혁적 차원의 큰 변화든 그 발상과 실천은 결국
사람이 하게 마련이고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기존제도의 변화는 항상
단기적인 부작용과 특정 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의 이해득실에 변화를
초래케 됨으로써 일단의 저항세력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더구나 40년 가까이 지켜왔던 금융제도와 관행을 개혁적 차원에서
변화시켜 나가자고 했을 때 모든 단기적 부작용과 "자기 밥그릇"문제에
따른 이해집단의 조직적 반발은 불을 보듯이 뻔한 노릇이다.

실명제개혁이 그랬고, 또 최근 노동관계법 개정에 따라 엄청난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단기적 부작용과 반발이 그것이다.

지금은 금융개혁에 따른 백가쟁명식의 의견이 속출되고 있다.

금융서비스의 영역별 장벽철폐도 좋고, 유니버설 뱅킹도 생각해 볼수
있는 제도다.

주인 없는 금융기관에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도 좋다.

그러나 이 엄청나고 힘든 일을 누가 정말 자기 밥그릇을 내던지고
부작용을 감내해가면서 추진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사고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인사제도상의 변화와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한 큰 노력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좋은 선진제도 도입도 그 시작부터 어려울 것이고
그 추진과정상의 왜곡과 시행착오는 결국 반쪽만의 성공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진제도의 껍질만 도입하고 그것을 일상업무에서 실천하고 전략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의 사고변화와 그 변화를 유도해낼수
있는 제도가 선진화되지 않고서는 결국 갓을 쓰고 자전거 타는 모양을
연출하기 쉽다.

금융산업의 공익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

그래서 제반 규제도 엄격하고 서슬이 퍼런 감독기관도 타업종에 비해
엄청나게 많다.

이처럼 엄격한 감독과 규제라는 굴레, 경직적이며 변화거부적인 기존
인사제도와 조직풍토 등 옴쭉달싹 할수 없는 경영환경하에서 막상
변화와 개혁을 일상 업무 속에서 주도해나가야 하는 조직의 경영자는
그저 무기력하게 자기 목만 만지고 있기 십상이다.

일본이 아무리 경제대국이고 엄청난 무역흑자를 손에 쥐고 세계
금융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국제금융계에서의 일본의
위상은 그저 미국이나 영국의 흉내내기나 뒷북치기가 고작이었다.

결국 우리의 앞북 역할을 해온 일본의 행정당국이 세계적으로는 뒷북
신세이니 우리는 뒷북의 뒷북 신세인 것이다.

당장 일본의 대장성 규모나 무소불위의 권위를지닌 엄청난 엘리트들의
숫자만 보아도 왜 닛케이 주가선물시장이 본거지인 일본을 떠나
싱가포르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거래량도 더 많은지 알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거기다 기업들의 인사제도와 조직문화도 우리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연공서열, 평생직장, 춘투-추투로 대변되는 투쟁적 노조 등등.

이제는 이 모든것이 고도성장기 일본의 한낱 유물이요, 전설로 치부되고
있지 않은가.

이번 금융개혁만은 일본이 잣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80년대 영국의 빅뱅이나 미국의 금융개혁이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사제도의 개혁과 이러한 기업문화의 일대 변화를 받아들일수 있는 풍토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고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것이나 신봉하는
조직원이 용납되고 보호받는 풍토에서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현재의 인사제도와 풍토에서는 바로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저항세력의
주체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성과에 대한 엄청난 평가와 그에 상응하는 보상체계가 정착될
때 눈치꾼도 줄어들 것이고 총대 메고 나서는 사람들이 힘을 얻고 비로소
금융개혁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