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따지자면 아메리카 대륙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페루 남부의
안데스 지역이다.

일단 잉카제국이 남긴 유적들을 볼수 있고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방법으로 그 후손들이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어
원주민문화를 더불어 3천~4천m사이에 나타나는 독특한 자연 경관은
평생 잊지못할 풍경들을 보여준다.

안데스 지역에서 장거리 여행인 경우 현지인들이나 여행객들에게 인기있는
교통 수단은 기차이다.

워낙 고도가 높아 날씨 변화도 무쌍하고 고장이 날 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기차를 이용한다.

안데스를 통과하는 기차는 이동수단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지만
여행객에게는 자연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만남을
통해 잊지못할 추억거리도 만들어준다.

페루 남부에서 인기있는 여행지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와
티티카카호 옆에 자리잡은 푸노이다.

현재도 페루 남부의 중요 도시인 쿠스코는 해발 3천3백m에 위치하며
푸노는 높이가 무려 3천8백20m나 된다.

이들 두 도시간 3백85km가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더불어 페루 남부의 해안쪽 안데스 중턱에 위치한 페루 제2의 도시
아레키파(2천3백25m)도 푸노에서 기차로 연결되는데 이 노선은 3백51km이다.

이 두 노선을 보통 안데스 고산철도라고 부른다.

고산철도라고 해서 스위스의 산악철도처럼 특별한 방식으로 운행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높은 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기차가 지나가는 대부분의 마을들이 3천~4천m 사이의 분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간혹 가다가 5천~6천m에 이르는 봉우리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고원에서 볼 때는 5천~6천m의 봉우리들도 1천~2천m밖에 되지않기
때문에 그렇게 높다는 생각은 들지않는다.

단지 만년설로 덮인 봉우리가 그 높이를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푸노에서 47km 떨어진 해발 3천8백25m에 자리잡은 훌리아카라는 역이
있다.

아레키파에서 오는 기차와 쿠스코에서 오는 기차가 이곳에서 만나
푸노로 향하는 기관차의 꽁무니에 붙게된다.

기차가 앞뒤로 오가는 동안 주변의 마을에서 온 원주민들이 민예품을
들고나와 여행객들의 쇼핑욕을 자극한다.

라마털로 만든 스웨터나 매트리스, 털모자 등이 인기 상품이다.

쿠스코나 푸노의 반값으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기차가 도착하면
여행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타지인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구간은 아레키파<>푸노이다.

8시간만에 2천m에서 4천m로 올라가는 코스이기 때문에 누구나 고소증을
겪게된다.

더군다나 리마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아레키파까지 왔다면
단 이틀만에 해수면에서 4천m까지 올라가는 것이므로 적응 기간이 짧아
상당한 고생을 하게된다.

그래서인지 아레키파역에서 밤기차가 출발할 때면 고소증방지 약을
파는 약장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지만 이에 반해 푸노<>쿠스코 구간은 상당히 흥겹다.

중간에 4천8백m나 되는 고개를 기차가 통과하지만 잠깐 지나는 것이고
푸노에서 적응 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충격이 훨씬 덜하다.

이 노선은 말 그대로 국제 열차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에서 단체 여행온 젊은이들과 유럽과 미국의
배낭족 친구들, 간간이 보이는 동양인 여행객, 그리고 페루 현지인 등
그 구성이 다채롭다.

인종 전시장이 따로 없다는 느낌을 받는 곳이다.

기차 여행에 더욱 활력을 불어넣는 이들은 중간에 탔다가 내리는
현지 장사꾼들이나 악사들이다.

이들은 매일 자신의 마을에서 기차를 타고 몇개역을 거친 다음
쿠스코 <-> 푸노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또 한번 장사를 하거나 공연을
펼쳐 돈을 번다.

집에서 만든 치즈를 들고타는 할머니, 삶은 계란을 파는 소녀,
엘콘도파사를 팬플루트로 멋지게 부는 악사들.

원주민들의 사는 모습이 피부에 와 닿는다.

평원에서 풀을 뜯고있는 라마무리들과 멀리 보이는 설봉들도 여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 여행정보 >>

아레키파 -> 푸노, 푸노 -> 쿠스코 구간은 4백km도 되지않지만 서는
곳이 많고 천천히 가기 때문에 모두 1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아레키파~푸노 사이는 밤기차만, 푸노~쿠스코 사이는 낮기차만 운행된다.

가장 큰 문제는 고소증의 극복이다.

해발 3천5백m까지는 건강한 사람은 고소증을 보통 겪지 않는다.

하지만 4천m에 가까워지면 대부분 눈이 따갑거나 속이 메스껍거나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 코스를 조절하여 저절로 고소 적응을 하는
방법이다.

우선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에 간다.

쿠스코 주변을 구경하면서 며칠을 보낸다음 푸노행 기차를 타면 증상이
좀 덜하리라 생각된다.

가장 피해야할 코스는 리마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푸노에 가는 것이다.

강문근 < 여 행 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