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술과 일본의 자본이 "아날로그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인 연구원들로 구성된 한 일본회사가 디지털반도체의 성능을 뛰어넘는
아날로그 반도체를 개발한 것.

주인공은 요우장이라는 별난 이름의 회사.

일본인이 세운 회사지만 연구원들은 대부분 도쿄대학으로 유학온 중국인들
이다.

영업방식도 독특하다.

생산라인은 전혀 없이 대기업으로부터 연구사업만 위탁받아 회사를 꾸려
가는 이른바 싱크탱크 기업이다.

휴대전화 단말기에 쓰이는 대용량집적회로(LSI)가 바로 이들이 개발한
첨단 아날로그 칩이다.

본격적으로 실용화되면 기존 칩에 비해 소요전력을 크게 낮추고 처리속도를
훨씬 끌어올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반도체다.

통신업계에서도 서서히 이 아날로그 반도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통신업체 10여곳에서이 반도체를 주문했다.

개당 가격은 1백만엔.

요우장의 아날로그 칩에 대해 NTT이동통신망연구개발부 연구부문 담당부장
은 이렇게 평가한다.

"이 칩은 연산속도가 높으면서도 소비전력은 매우 적다. 화상, 음성등
정보를 대량으로 전송해야 하는 멀티미디어 이동통신에 적합한 기술이다"

특히 기술자들이 이 반도체에 찬탄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는 "교과서에 없는
독자적인 기술을 응용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이 칩의 회로는 지난 89년에 이 회사에 입사한 중국 유학생 수국양이 기초
했다.

또 다른 중국유학생 주장명이 이를 이동통신용 단말칩으로 제품화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도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었다.

수연구원이 요우장에 입사할때 나이는 불과 28세.

연구경험도 "전무"했다.

그는 입사이후 1년간 원할때 공부하는 자유로운 시간을 누렸다.

그동안 전자회로 관련분야보다는 양자역학, 생리학등 기초과학 지식을
왕성하게 섭취했다.

그결과가 기존의 발상을 뒤집는 새로운 반도체의 개발로 나타났다.

요우장이 첨단 아날로그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것은 독특한 경영덕분만은
아니었다.

"디지털 신호처리는 멀지않아 막다른길에 봉착한다"는 이 회사의 굳은
신념도 한 몫했다.

인간의 오감은 모두 아날로그식으로 돼있다.

이것을 디지털체계로 변경한다는 것은 어려울뿐 아니라 "낭비"라는게
이회사의 지론이다.

디지털은 0과 1의 세계다.

유 아니면 무라는 분명한 논리 때문에 정밀도도 높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다르다.

반도체 한가운데 위치한 트랜지스터를 흐르는 전류의 섬세한 파장에 따라
모든게 제어된다.

따라서 트랜지스터 개개의 성질차에 따라 결과가 쉽게 왜곡된다.

아날로그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우장은 이런 통설에 굴복하지 않았다.

수연구원은 "아날로그의 정밀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가공기술이 미숙했을때
나온 얘기다. 극히 작은 공간에 소자를 나란히 세우면 소자 1개의 성질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개체차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라 만든 아날로그 반도체가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요우장이 겨냥하는게 단순한 아날로그 반도체개발은 아니다.

최종목표는 극히 적은 전력을 가지고 초고속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뉴론
소자" 반도체 개발이다.

"인간 신경"의 움직임을 닮은 뉴론소자만이 디지털시대를 뛰어넘는 최후의
기술이라고 이 회사는 믿고 있다.

사실 0과 1밖에 없는 디지털 세계에는 "주관과 객관"을 무자르듯 분리하는
서구근대사상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요우장은 "동양에는 동양의 반도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이 바로 아날로그식 뉴론소자 반도체다.

"발상의 대전환"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실리콘밸리의 지적흥분을 느끼게 하는 몇 안되는 일본기업"이란 찬사가
요우장에게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