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를 눈앞에 둔 지난 28일(토요일) 오후 3시.

서울 을지로 두산그룹 본사 21층 집무실에서 만난 박용오 회장은 대부분의
임직원들이 퇴근한 시간임에도 컴퓨터를 통해 계열사별 판매상황과 각종
보고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룹회장으로 취임한지 이제 한달 남짓.

그동안 박회장은 정말 정신없이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계열사를 순회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몸으로 체험했는가
하면 창업 2세기를 맞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구상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주력기업인 OB맥주가 대형 적자를 낸데다 우리 기업 전반의 경영환경이
불경기로 접어든 상황에서 두산호를 이끌게 된 박회장은 "전통 1백년을
이어온 그룹이 다음 1백년에서도 신나게 전진할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게
나의 소임"이라고 말했다.

[[[ 약력 ]]]

<>경기고 졸업(56년)
<>미국 뉴욕대 경영학 석사(64년)
<>OB씨그램 사장(81년)
<>동양맥주 사장(81년)
<>두산그룹 부회장(84년)
<>두산상사 회장(93년)
<>두산그룹 회장(96년)
<>"수출1억불탑"및 "금탑산업훈장" 수상(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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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기웅 산업1부장 ]]]

-늘 건강해 보이십니다.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지난 77년부터 매일 아침 5km씩 조깅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말이면 그동안 뛴 거리가 1만3천km정도 될 겁니다.

앞으로는 직원들하고 주말마다 등산을 다닐까 합니다.

같이 산을 오르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건강에도 좋지만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하고 단결심도 고취될 테니까요"

-취임후 이제 한달남짓 되셨는데 그동안 지방사업장을 두루 도는 등 강행군
을 하시는 것 같더군요.

"기업을 경영한다는게 어디 쉽습니까.

기업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고달픔쯤은 문제가 아니지요.

대학교수에다 기업경영인(한국타이어 사장) 장관 정치인 등을 두루 거친
나웅배 전 부총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경영인 교수 공무원 정치가를 다 경험해 보았지만 역시 기업경영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입니다"

-사업장을 둘러보시니 현장 사원들의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예전보다 사기가 다소 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반적인 불경기인데다 우리그룹이 올해 어려운 한 해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현장을 다니며 그룹의 현황과 비전을 설명해주니 직원들도 "이제는
우리도 뭔가 해야겠구나"라는 의지를 다지더군요.

내년 1월말까지 주력기업을 중심으로 한 1차 사업장 점검을 마치고 곧바로
다른 계열사 현장도 찾아보려 합니다"

-현장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주로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잘될 때는 아무말도 없다가도 조금 어려워지면 별의별 소문이 다도는게
세상인심입니다.

기업이 경기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사원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적당한 선에서 포기해 버리는 경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상사는 부하들을 아끼고 보살피고 부하직원은 상사들을 존경하고 따라
주어야 기업이 잘 된다"는 평소의 철학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사원들도 공감하는 눈치였습니다.

이번 현장방문을 통해 느낀 것은 사업계획도 중요하지만 우선 신바람나는
조직을 만드는게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철저한 현장중심의 경영을 통해 사원들의 사기도 올리고 이들의 아이디어를
경영정책에도 반영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두산그룹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근래 그룹이 어려워진 것이 한편으론 이런 지나친 보수성에 기인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동안 우리그룹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 간다"는 신중한 경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누가 기술력이 앞서고, 누가 조직을
잘 장악하느냐가 승부의 중요한 관건이 됐습니다.

취임과 함께 경영방침을 "도전경영"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그룹의 핵심역량을
수익성이 높고 미래지향적인 사업에 집중하자는 뜻입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세계화를 이루려고 합니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많은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됩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그러려면 회사 분위기와 직원들의 근무자세도 많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입니까.

"과거의 영광에서 빨리 벗어나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기회있을 때마다 사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또 좋은 제안이나 건의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달라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많이 변할 것입니다"

-그룹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며 한때 자금압박설이 나돌기도 했는데...

"OB맥주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밖에
안됩니다.

이 회사가 어려웠던 것은 맥주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공장을 증설
했는데 생각보다 수요가 늘어나지 않아 투자회수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
입니다.

현재는 주력제품인 "OB라거"의 판매가 상당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다른 계열사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적자가 나는 회사도 있지만 나머지 회사들은 나름대로 잘하고 있습니다.

두산건설의 경우 과거 덕소종합건설을 인수하며 떠안은 빚이 워낙 많았지만
이제는 완전히 정상화됐습니다.

금년에 1조1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예정입니다.

그룹의 발주량이 매출의 10%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이처럼 성장한 것은
대단한 것이지요.

현재 그룹 전체가 미국 맥킨지사로부터 경영컨설팅을 받고 전반적인
리스트럭처링을 진행중입니다.

내년에는 경영내용이 더 좋아질 것입니다"

-추진중인 리스트럭처링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수 있을까요.

"우선 그룹의 사업구조를 정보유통 생활문화 기술소재 등 3가지 사업군으로
구분해 각 부분을 골고루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나아가 사업구조도 정밀화학 레저 유통 등 고부가가치사업으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현재 25개사에 이르는 계열사를 오는 98년까지 19개사로 통.폐합하여
경쟁력을 높일 계획입니다.

오는 2000년에는 그룹의 매출을 현재보다 두배가량 늘어난 12조원으로
끌어올리고 이중 20%를 해외사업에서 벌어들일 생각입니다"

-그룹이 신규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보통신이나 유통 레저 등에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참가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두산그룹이 준비하고 있는 신규사업은 남들이 안하는 것들입니다.

유통만 하더라도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을 하자는게 아닙니다.

현재 을지로3가에 두산타워를 건설중인데 이는 의류도매센터입니다.

오는 99년 완공될 예정이지요.

레저사업은 춘천CC를 중심으로 오는 97년 4월에 준공 예정인 춘천리조트가
있으며 강릉에도 두산랜드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투자재원은 어떻게 마련하실 계획입니까.

"경영권이 없는 투자회사의 단순지분과 OB맥주 영등포공장 등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여 5천여억원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투자지분을 매각한 한국3M 한국코닥 등은 사실 경영상황이 괜찮은 회사들
아니었습니까.

"이익이 나더라도 경영권이 없으면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은 사업을 통해 얻어진 이익금을 나눠먹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돈을
투자해 돈을 벌어들이는 금융회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럴바에야 차라리 종합금융같은 회사를 갖는게 낮지요"

-우리도 이제 세계적인 맥주회사를 가질 때가 됐지 않습니까.

OB맥주의 세계화 같은 것은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세계 맥주업계 순위로 따지면 현재 OB맥주는 15위권 정도입니다.

가까운 시일안에 이를 10위권안으로 진입시킨다는 계획입니다.

금년의 경우 OB맥주의 수출볼륨은 2천2백만달러정도 됩니다.

대만의 에센샬사, 홍콩의 불루겔사 등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수출을 하고 일본의 오리온맥주에서도 수출요청을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앞으로는 자체 브랜드의 수출을 늘리고 해외에 공장도 지어 현지시장을
공략한다는 구상입니다"

-내년부터 맥주에 대한 주세가 1백50%에서 1백30%로 내려가는데 만족할만한
수준입니까.

"아직까지 맥주가격은 모순이 많습니다.

주세 등 관련세금을 빼면 맥주 가격이 생수보다도 쌉니다.

소비자들은 맥주가 아닌 세금을 마시는 셈이지요.

현재 국내 주류소비량중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57%입니다.

맥주가 이처럼 대중주로 변모했는데도 양주보다도 주세가 높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나눈 것 같습니다.

주량이 대단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맥주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OB맥주 사장시절에는 신입사원들과 사발에 술을 가득 부어마시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 이제는 쉽지 않더군요"

-술은 어떤 것을 좋아하십니까.

"맛이야 역시 OB라거가 제일 좋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카프리"를
좋아합니다.

칼로리가 적거든요"

-스포츠를 대단히 즐기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신데.

"골프도 좋아하고 스키도 아주 즐기는 편이죠.

그러나 회장직을 맡고나서는 골프장 근처에도 못가봤습니다.

스키장은 말할 것도 없고요"

-미식가로도 소문이 나셨는데요.

"고급요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맥주장사하며 이곳저곳 맛있는 음식점을
많이 안다는 것이 그렇게 알려진 것 같습니다.

사실 미식가로 치면 박용곤 명예회장께서 한수 위입니다.

미식가가 되려면 직접 요리도 만들줄 알아야 하는데 명예회장께서는 요리도
잘 합니다.

저 역시 텔레비전의 요리강좌를 재미있게 보곤 하니 미식가라고 부를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요즘에는 어떤 분들과 자주 어울리십니까.

"OB베어스의 구단주를 맡다 보니 구본무 LG그룹회장 박건배 해태그룹회장
이래흔 현대건설사장 등과 자주 만났습니다.

친구들로는 경기고 동창생인 대우그룹의 이우복 고등기술연구원 이사장,
조경목 한국케이블TV협회장, 고종진 OB맥주부회장, 이준용 대림그룹회장
등과 한달에 1번 정도 만납니다.

예전에는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앞장서서 자리를 만들곤 했는데 요즘은
해외사업이 바빠 자주 못보는 편이지요"

-평소 영향을 받은 경영인들을 꼽는다면.

"선친이신 박두병 초대회장과 전문경영인인 정수창 회장을 들수 있습니다.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들어주신 분들이지요"

-정축년생으로 소띠시군요.

내년은 소띠해인데 아마 두산그룹과 회장님께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새해에 특별히 바라는 소망이 있으시다면.

"역시 그룹이 재도약할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거지요.

환갑을 맞지만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로 신바람나는 직장을 만드는게
제 소망입니다"

< 정리=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