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26일 새벽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을 기습단독처리함에 따라 정국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자민련 집단탈당사태와 노동관계법 등의 기습처리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여야의 강경대치는 내년초로 이어지면서 누가 차기정권을
잡느냐 하는 대통령 선거전의 양상을 띨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신한국당은 야권공조의 한 축인 자민련 "흔들기"를 계속할 전망이며 확실한
정국주도권 확보를 위해 지난 총선후 신한국당에 입당하지 않고 남아 있는
무소속의원들의 영입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위 DJP 연합을 근간부터 분쇄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이에 대응한 야권의 버티기작전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기습처리된 안기부법이나 노동관계법 등의 원천무효화 투쟁을 벌여
나간다는 전략이다.

야권이 안기부법 개정에 반대는 했지만 한총련사태와 잠수함 무장공비침투
사건을 경험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상 법개정에 끝까지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
던게 사실이다.

또 노동관계법의 경우도 마땅한 대안을 내놓을 형편이 못됐다.

야권으로서는 "뜨거운 감자" 였던 이들법안을 여권이 기습처리해 줌으로써
어쩌면 정치적 짐을 덜었다고도 볼수 있다.

대신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새벽 기습처리"라는 부담을 여권에 안겨줬고
이를 대여투쟁의 호재로 삼을수 있게 됐다.

이날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국회에서 전격 회동을 갖고
6개항의 투쟁방안을 밝히는 등 야권공조를 강화하면서 강력한 대여투쟁을
벌이겠다는 각오를 천명했다.


[[[ 여권 ]]]

한마디로 여권핵심부의 정국운영기조는 "강성"으로 흐를 것 같다.

신한국당 수뇌부를 비롯한 여권 핵심부는 얼마전부터 "내년 대선에서의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말들을 자주해왔다.

이는 문민정부 출범후의 대북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정책이나 대기업
정책 등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우왕좌왕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정권의
신뢰성"을 잃었다는 다소 자조적인 분석에서 비롯됐다.

최근들어 당수뇌부는 "어떤 정책도 모든 국민이 다 만족할 수는 없는 것"
이라며 국가장래나 경제발전을 위해 "밀고 나갈것은 밀고 나간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안기부법이나 노동관계법의 개정문제를 놓고 여권내부에서도 상당기간 진로
선택에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강성"쪽이 여권의 분위기를 주도했고 이같은 기류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노동관계법의 경우 정부안에서 내년부터 허용키로 했던 상급단체의 복수
노조를 3년간 유예시킨 것만 봐도 이같은 여권의 강경기류를 감지케 하고도
남는다.

노총 등의 강경대응이 예상되는 것이 뻔한데도 "밀어 붙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노동계의 예상되는 강경대응에 사전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내년초에 들어서는 자민련 흔들기를 비롯한 민주당 끌어안기 무소속 영입
등을 통한 정계재편을 시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말 레임덕 가속화를 차단하기 위해 정치권
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여권핵심부는 이어 김대통령 취임 4주년을 전후해 또는 한두달 늦춰진 시점
에서 대권후계구도를 어느 정도 점칠수 있는 대폭적인 당정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분석된다.

차기정권 창출을 위한 광범위하고도 치밀한 정치일정 관리에 들어갔다고
볼수 있다.

[[[ 야권 ]]]

신한국당의 안기부법 노동관계법 개정안 단독기습처리를 "김영삼 쿠데타"
"일당 독재의 상징적 폭거"로 규정한 야권은 원천무효투쟁을 벌여나가기로
결정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날 오전 긴급회의와 양당 총재회동, 합동의총 등을
통해 대책을 논의한뒤 <>항의및 원상회복 요구를 위한 김영삼 대통령 면담
요구 <>양당 비상대책공동위원회 설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헌법재판소
제소 의장및 부의장 불신임안 제출 등 법적 대응 <>이틀간의 항의농성
<>필요시 대규모 장외투쟁 <>양당 공동 신문광고를 통한 대국민 홍보 등
6개항의 투쟁방안을 공동발표했다.

이같은 야권의 반발과 대응은 예상된 것이지만 "투쟁강도및 시한"에서
상당히 자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우선 두 야당은 항의농성기간을 예상보다 짧게 잡았다.

소모적인 투쟁은 지양하고 항의효과는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자민련 안택수 대변인은 "과거 야당은 무기한으로 (농성을)했는데 농성이
끝난 뒤에는 모양이 흐트러진 경우가 많았다"며 "농성시한을 정한 것은
의미있고 신선한 결정"이라고 자평했다.

이런 맥락에서 극한 투쟁방법은 모두 제외됐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의원직 사퇴 등 강경대응방안을 제기하는 의원들
이 많았으나 양당지도부는 이들의 투쟁정신을 높이 평가하되 감정을 억누르고
끈질기게 투쟁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두 야당은 또 이번 투쟁의 목표를 흔히 볼수 있는 "정권타도"가 아닌
"김영삼 정권의 비민주성 폭로" "원상회복"에 두고 있다.

안대변인은 이와관련, "여당이 대선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암시하는 이번
행위를 "교정"하지 않는 한 내년 대선은 무의미할 것"이라며 "교정"에 투쟁
의미를 부여했다.

정대변인도 "일과성투쟁이 아닌 감정을 억누르고 끈질기게 투쟁해 내년
대선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둬야 한다"며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원외 지구당위원장을 포함한 장외투쟁도 "추이를 봐가며"라는 단서를 달아
제시됐고 노동계와의 연대투쟁 가능성은 아예 언급조차 안됐다.

장외투쟁이나 노동계와의 연대투쟁은 무엇보다 현시점에서 필요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감행한다 하더라도 얻는 것보다 공조균열, 여권에 의한 역이용
등 부작용이 더 많을 것이라는게 두 야당의 판단이다.

결국 두 야당이 이날 결정한 투쟁방안은 양당간 보폭을 적절히 조절, 야권
공조틀을 유지하고 힘을 아껴 대선장정에 대비하겠다는 장기전 구상으로
풀이된다.

다만 야권의 이런 "절제된" 대여투쟁은 그 자체의 내부단속효과에도 불구
하고 외부작용에 의한 소속의원탈당 등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한단계
높게 재조정될 여지는 있다.

< 허귀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