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부서의 증폭 개각과 그에 잇따르는 후속 인사로 경기위축 속에도
세밑 관가는 술렁이고 있다.

관료 사회에서 개각처럼 대단한 일은 없다.

직접 당사자나 그 부서에만 머물지 않는다.

차관에서 말단에, 그리고 인접부처로 연쇄되는 개각의 파급범위는
종횡으로 넓다.

따라서 개각은 관가의 기류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수 있다.

그러나 그 보장은 없다.

자칫하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커 안 하느니만 못할 때도 있다.

그 생명은 공정성이다.

발탁된 사람, 탈락된 사람이 아울러 납득하는 기준을 뜻한다.

매우 힘든 일이지만 이번 개각의 후속인사가 그렇게 이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시각과는 다르다.

관례 통속상식에 매달린 나머지 시대조류를 호흡하지 못하는 과오를
걱정하고 정체를 우려함이다.

한 단서가 있다.

지난 주 어떤 신임장관의 포부속에 일치 단결을 통한 부처영예의 재현이
비쳐졌다.

오랜 관의 풍토에서 이같은 소신은 직원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을 소신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여기에 바로 구멍이 있다.

그같은 신임장관의 시정방향은 한마디로 부처가 봉사할 대상인
행정수요자, 곧 국민 편익의 존중보다는 부하 직원들의 사기전작에
더 큰 뜻이 있다고 볼 개연성이 있다.

전례는 많다.

외부평판 좋지 않던 장관으로 전후임 누구보다 최고의 내부인기를 누린
예가 많다.

그 인기의 핵심은 보스 기질이다.

부처의 권한범위를 넓히는 힘겨루기에서 타부처를 압도하고 부하의
후생에 최대 관심을 기울이며 더욱 신분보호엔 불문곡직 과감하다.

인사에는 연고 우선으로 내사람 챙기는데 철저하다.

각 부처서 꼽히는 역대 명장관이란 재임중 기구-인원을 최대 팽창시키고
부하의 대민업무 권한폭을 최대 보장해준 사람이다.

그 재임시 부처로는 잘 나갔다.

수십년 한국행정의 모델이었다.

뒤집으면 뭔가.

합리행정, 위민행정과는 정반대로 관료주의의 극치이다.

더욱 나라나 국민쪽으로 봐선 역관이다.

마침 여러 면에서 한국의 모범이던 일본 관료사회에 유사이래 최대
역풍이 불고 있다.

대장성의 주택자금 관리부정에서 시작, 후생성 통산성의 고하 관리들이
골프 식사 여행접대, 현금수회 등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막 겪고 있다.

일본에서 관료는 전후 부흥의 안출자 견인차 관리자로 극찬을 한몸에
받았었다.

그러나 민주도시대 도래에 불구, 관권에 안주하며 작은 정부로의 이행에
소극적이다가 기어히 재난을 만났다.

미국의 한 전문가는 일본이 과거 관주도 경제의 대성에 도취, 앞으로도
관권전횡에 연연하는 한 근년의 침체를 극복하고, 21세기에 번영을
지속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현실은 일본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가 타산지석을 삼아야 할 곳도 바로 그곳이다.

경쟁력 회복이 관의 임무라고 말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뇌물을 먹은 관리가 안되는 일을 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원래 되는 일을 먹고나서 해줄 뿐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관은 "우리만이 애국자"라는 과욕을 버리고
한국경제의 기관차역을 민에 맡겨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