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세집을 전전하면서 고생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줄수 있게돼 기쁩니다"

제38회 사법시험에서 최고령으로 합격한 박구진씨(43)는 20일 합격
소식을 듣고 불혹의 나이에 사법시험이라는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면서
겪었던 쓰라린 기억들을 뒤로한채 말없이 지켜봐 준 가족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전남 강진 출신으로 2남5녀중 장남인 박씨는 지난 83년 결혼한 부인
김봉입씨(41)와의 사이에 영은(13.삼성초등학교 6년), 정선양(4)과
태욱군(10.삼성초등학교 3년) 등 3남매를 거느린 가장이기도 하다.

고려대 경영학과 73학번인 박씨는 학생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2차례 제적과 복학, 감방생활 등 결코 순탄치않은 대학시절을 보내고
입학한지 11년만인 84년에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짓기도 했던 박씨는 졸업직후
잠깐동안 부동산 소개업에도 손을 댔다가 대학 선배인 현 국회의원
이상수 변호사 사무실에서 지난 93년 7월까지 사무장과 노동문제 상담을
담당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원만한 가장으로 살아가던 박씨는 마흔살이 되던
지난 93년 6월 막내딸 정선양이 태어나면서 아버지로서 뚜렷한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다음달
돌연 사직서를 내고 신림동 "문창고시원"에 파묻혀 뒤늦은 공부에의
열정을 불태웠다.

박씨는 94년 처음 치른 1차 시험에서 낙방하고 다음해 1차를 합격한뒤
다시 2차에서 고배를 마셨고 마침내 합격의 기쁨을 차지했다.

평소 과묵하고 자신을 꾸미지 않는 성격인 박씨는 지난해 3살난 딸을
등에 업고 전 가족이 지리산을 종주했을 정도로 산을 좋아한다.

박씨는 "노동관계법에 정통해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소신있는 법조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