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극계는 "97 세계 연극제 서울/경기" 준비로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전체적으로는 뮤지컬 바람이 더 거세지고 벗기기 연극이 한층 기승을
부리는 등 지난해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올 연극계의 최대 이슈는 97 의왕 세계 연극제의 무산.

97년 ITI (국제극예술협회) 서울총회와 함께 개최, 연극바람을 불러
일으키겠다는 의도로 기획된 이 세계 연극제는 그린벨트 훼손이라는
암초에 걸려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의왕의 백운호수변에 야외극장 등을 건설해 "자연과 연극의 조화"를
이루겠다던 집행위의 계획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그린벨트내 건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경기도의회가 연극제지원금을 전액삭감함에
따라 전격 취소된 것.

연극계 내부에서도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계획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주최측인 한국연극협회는 사태의 책임을 우리 사회의 문화에
대한 인식부족탓으로만 돌려 문제를 드러냈다.

빠른 시간안에 대회 개최를 성사시키는 추진력은 좋았으나 문화는
스포츠가 아닌 만큼 여러 각도에서 차근차근한 준비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 연극제 무산을 계기로 80년대 이후 국내 연극계를 양분해오던
한국연극협회와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가 손잡고 "세계 마당극 큰잔치"를
기획, 연극계 역량결집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뜻밖의 수확으로 평가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뮤지컬 돌풍은 연초 대형 뮤지컬들이 잇따라 막을
올린 것으로 시작됐다.

극단에이콤의 "명성황후"가 전회 매진기록을 세우며 포문을 연 뒤
"사랑은 비를 타고" "왕과 나" "블루 사이공" "사운드 오브 뮤직" "42번가"
"고래사냥96" "님의 침묵" "쇼코메디" 등 수많은 뮤지컬들이 무대에 올라
기존의 "지하철1호선" "아가씨와 건달들" "코러스라인" "넌센스" 등
장기공연작들과 더불어 뮤지컬 풍년을 기록했다.

아울러 "애니"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해외 유명 뮤지컬들이
직수입돼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입증했다.

특히 "레미제라블"은 가볍지 않은 내용에도 불구,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큰 충격을 주었다.

국내 작품중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블루사이공"과 학전의 "지하철
1호선"은 거대자본과 비싼 무대가 아니더라도 우리 뮤지컬이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뮤지컬로 평가됐다.

정극부문에서는 전반적으로 실험적인 시도가 약화되고 상업주의 경향이
강해진 가운데 "날보러와요" "슬픔의 노래" "어머니" "얼굴 뒤의 얼굴"
"햄릿" 등이 주목받았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서울연극제는 그동안 희곡심사에서 실연심사 위주로
작품선정 방식이 바뀜으로써 연중 최고작들이 집중 공연돼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중견극작가들과 오은희 김윤미 조광화 등 신인작가들의 활약으로
창작극은 어느해보다 풍성했던 반면 번역극무대는 저작권 문제가 주는
중압감때문인지 최신 화제작은 거의 소개되지 않은 채 기존공연작들로
채워졌다.

외설극과 저질코미디극은 대학로소극장가에 전용극장이 잇달아 생길
만큼 자리잡았고 특히 벗기기 연극은 "미란다" 유죄판결이후 더욱
대담해지고 양적으로도 증가, 97년 국제연극제를 앞둔 우리 연극계가
풀어야할 숙제로 남았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