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면서 출범한 15대국회 첫 정기국회에서의 새해 예산
심의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세부담문제와 사업성 예산 등의 우선
순위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못했다.

본회의 통과도 여야대결 구도하에서의 악순환인 여당 단독처리로 막을
내리게 됐다.

여야가 예산안의 법정처리시한인 2일 총무회담 등을 갖고 정치적으로
절충을 벌이긴 했으나 절충결과에 따른 본회의에서의 표결방식에 관계없이
새해 예산안은 정부원안이 거의 그대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또 이번 국회는 "조정권이 없는 여당과 짧은 심의기간"이라는 여건으로
사실상 하나마나한게 국회에서의 예산안심의이긴하나 그나마 주어진 심의
기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수박겉핥기와 지역예산 따내기"의 전철을 되풀이했다는 지적이다.

여당측은 가급적 정부원안을 손대지 않으려는 입장을 고수했고 야당측은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의 "제도개선"과 "추곡가 인상"이라는 정치적 사안에
코가 꿰어 예산안 자체에는 별 관심을 두지않았다.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된 부별심의는 "대북 밀가루제공설"이 불거지면서
며칠간 공전을 면치못했다.

정부와 여당측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예결위 공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속개된 짧은 심의과정에서도 대부분의 의원들은 출신지역구와 관련된
예산의 배정이나 증액을 요구했다.

또 관계국무위원들은 예결위원들이 "불요불급한 것이니 삭감하는게
좋겠다"고 하면 "중요한 사업이니 배려해 주면 고맙겠다"고 "애걸"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 시급한 사업으로 우선순위에 따라 당연히 예산이 배정됐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면 부처장관들은 예산을 요청했으나 재경원이 삭감해
버렸다는 식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여야는 헛일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뒤늦게 휴일인 1일에도 계수조정소위를
열어 절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사안도 마찬가지였지만 예산안도 역시 청와대가 결심해야만 정부나
여당이 그에따라 움직이는 "체바퀴 도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박정호 < 정치부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