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이 복수노조문제에 대해 "조건부 허용" 입장을 철회하고 "불가"로
급선회한 것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기업의 "경쟁력 급락"
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복수노조를 허용할 경우 각 사업장의 노사및 노조관계가 도저히
제어되지 않는 상황으로 악화되리라는 재계의 우려가 그만큼 절박함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경총 회장단이 이날 성명서에서 밝힌 "복수노조허용 조항이 포함된
노동법개정은 의미도 없고 불필요하다"는 입장은 그동안 복수노조 및 제3자
개입금지 허용등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전경련의 강경론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총파업등 강경일변도로 나가고 있는 노동계와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총 관계자는 "정부가 개별사업장의 복수노조허용은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어 허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국내 노동계 관행을 볼 때 당장 내년부터
각 사업장에서 각종 노조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될 경우 노사분규와 노노분규가 겹쳐 경영환경은 최악이 될
것이라는게 재계의 우려란 얘기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선 "노개위가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고 곧 바로 장외
집회를 열고 힘의 논리를 밀어붙이려는 노동계를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는
비난의 소리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즉 이날 경총이 내놓은 "복수노조 시기 상조"의 입장은 그동안 노개위
내에서 합의정신을 존중해 상당폭 양보했던 부분들까지도 전부 거둬드릴
수도 있다는 경고에 다름아닌 것이다.

한편으론 이날 경총회장단 회의는 자칫 노동계의 힘의 논리에 밀릴 가능성
이 있는 정부를 견제하겠다는 뜻도 내포됐다.

아울러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등 고용유연화 정책을 관철시킬 있도록
정부에 힘을 몰아주는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는 또 여론 환기의 목적도 있는 듯 하다.

노동계가 소위 "노동법개악투쟁" 집회를 잇달아 열고 대국민 활동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법개정 실패나 지연의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다는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전경련이 시종 일관 복수노조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경총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옴으로써 정부 주도의 노동법
개정이 연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1세기 노사관계 구도를 결정지을 노동법개정에 포함시킬 내용을 두고
노사간 마찰이 더욱 격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