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술내나는 등불 아가씨의 입술을 피하며 몸을 움츠렸다.

"왜? 내 입술이 더러워서? 대낮부터 한잔 하긴했지. 남자들은 말이야
내 입에서 술내가 솔솔나는 것을 보면 사타구니가 무지근해지는 모양이야.

술기운으로 발그레해진 두눈으로 살짝 웃음을 지어주면 남자들 그냥
넘어가버리지.

그러면 남자들 약을 살살 올리다가 안기거나 안아주면 남자들 그저
녹아버리는거야. 물론 남자들 그거는 우뚝 서지만 말이야"

등불 아가씨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보옥의 사타구니를 만졌다.

"어머, 도련님도 남자라고 그게 섰네요.

근데 왜 나를 피하는 거죠? 그게 섰다는것은 나를 원한다는 증거예요.

남편이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나를 가져요.

나 거기가 벌써 촉촉해졌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등불 아가씨가 자신의 허벅지를 보옥의 허벅지에 대고는
문질렀다.

"제발 이러지 말아요.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창피한 일이잖아요"

보옥이 사정을 하며 물러서려 애썼다.

"아이구 이 저고리봐. 아까 훔쳐보고 있으려니 청문이 저고리를 도련님이
입던데 시녀 옷을 입은 기분이 어때요?

시녀 옷을 입었으니 내 시중 좀 들어줄래요? 호호호"

등불 아가씨가 웃옷들을 벗어 보옥의 팔에 척 걸쳐두었다.

보옥은 할수 없이 그 옷들을 횃대에 걸고는 방을 나가려 하였다.

등불 아가씨는 웃옷을 벗어 젖통이 드러난 상체로 보옥을 밀어붙이면서
보옥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도련님은 소문에 듣던 대로 아주 잘 생겼군요.

여자들과 노는 솜씨도 고수라는 말을 들었는데 오늘은 어쩐지 시시하다"

등불 아가씨가 어리광을 피우듯이 몸을 흔들며 코맹맹이 소리를 내었다.

한편 청문이 자리에 누워 들으니 안방쪽에서 등불 아가씨가 보옥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청문의 두눈에는 소리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온갖 정욕으로 가득찬 더러운 이 세상을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실을
뿐이었다.

청문은 자기 저고리와 바꿔 입은 보옥의 저고리 옷깃을 한손으로 들추어
코를 갖다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보옥의 체취가 배일대로 배어있는 냄새였다.

그 냄새는 곧 이홍원의 냄새이기도 하였다.

이 냄새속에 저승으로 간다면 저승에서도 이홍원같은 곳에 들어가 살지도
몰랐다.

거기서 보옥 도련님이 죽어서 저승으로 올때까지 손꼽아 기다리리라.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