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이 이불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웃저고리를 벗어 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 저고리를 조금 전에 자른 손톱 두 개와 함께 보옥에게
건내주면서 말했다.

"도련님, 제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이 저고리와 손톱을 보시면
저처럼 여겨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다른 소원이 없겠어요.

그 대신 도련님께서는 지금 입고 계신 저고리를 나에게 입혀주세요.

그러면 제가 관 속에 들어가도 도련님을 모시고 이흥원에 있던 때와
마찬가지가 되잖아요"

보옥은 청문의 말에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거리며 저고리를 벗어
청문에게 입혀주고 자기도 청문이 벗어준 저고리를 입었다.

그리고 청문이 건네준 손톱들은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였다.

"도련님, 지금 입고 계신 저의 저고리와 손톱을 보고 누구 것이냐고
누가 물으면 거리낌없이 제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이왕 누명을 쓰고 죽는 마당에 차라리 도련님과 사랑을 나누었다고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청문이 눈물을 흘리며 보옥이 입고 있는 저고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호호호"

갑자기 간드러진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등불 아가씨가 왔어요"

청문이 급히 말하고는 이불을 끌어 당겨 얼굴을 가렸다.

"잘들 노시는군요.

두 사람이 나눈 말 다 들었어요.

주인 도련님이 어떻게 시녀였던 여자와 그런 말들을 주고 받을 수
있어요?

청문이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말들을 들으니 별로
억울할 것도 없는 것 같군요.

주인 도련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등불 아가씨가 청문 쪽을 흘끗 내려다보며 비씩 웃었다.

청문은 잠이 든 척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등불 아가씨가 보옥의 옷자락을 슬며시 끌어 당겼다.

"도련님, 혹시 청문이보다 내가 더 보고싶어 온 거 아닌가요?"

"아주머니, 제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세요.

청문이 들으면 어쩔려구요"

보옥이 당황해 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청문이 듣지 못하도록 그럼 안방으로 들어갈까"

그러면서 등불 아가씨가 보옥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안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안방으로 들어간 등불 아가씨가 이번에는 보옥의 허리를 껴안으며 입을
맞추려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